맬로리 애시모어(4·왼쪽)와 제이미슨 윌리엄스(6)는 법적으로는 사촌 사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반쪽짜리 남매지간이다.
‘공식적’으로 맬로리 애시모어와 제이미슨 윌리엄스는 사촌이다. 그러나 조금 더 파고들면 이들 사이의 혈연관계는 복잡해진다. 둘은 법적으로는 사촌 사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반쪽짜리 남매지간이다. 이 뒤얽힌 관계의 단초는 수년 전 로라 애시모어에게 내려진 임신 불가 판정이었다. 애시모어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 리는 곧이어 정관수술을 했다. 불임의 멍에를 로라 혼자 짊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정내 자녀들 핏줄 복잡하게 뒤엉켜
미혼 동거가구·싱글 맘 증가도 맞물려
전통적 가계도 개념에 혁명적 변화 진행
그러나 자녀가 없는 결혼생활은 아무래도 허전했다. 애시모어 부부가 입양을 논의하기 시작할 즈음 로라의 친언니인 제니퍼 윌리엄스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기증받은 정자를 이용해 동생 부부에게 아이를 낳아주겠다며 대리모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애시모어 부부는 고심 끝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데려오는 것보다 그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7년 9월 맬로리가 태어났고, 곧바로 애시모어 부부에게 입양됐다.
맬로리와 제이미슨의 경우에서 보듯 미국의 가계도(family tree)가 복잡하게 헝클어지고 있다.
계보학자들은 오랫동안 혈통과 혼인을 따라 가족관계를 규정해 왔다. 그러나 가족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서 가계도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학교들은 가계도 작성을 공식 프로젝트로 다루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메릴랜드주 록빌 소재 그린 에이커스 스쿨의 7학년 사회과목(social studies) 담당 교사인 아드리아나 머피는 학생들에게 가계도 대신 가족사를 소개하는 글을 써서 제출하게 한다.
머피는 “수업시간에 가계도를 가르치려면 부득이 대리모라든지 정자기증자, 동성커플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가족구성은 혁명적인 변화을 일으키고 있다.
미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미국내 미혼 동거 가구 수는 기혼 가구 수를 넘어섰다. 대리모나 정자기증자 혹은 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갖는 동성 커플도 늘어났다.
미국 내 대형 정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의 크라이어뱅크는 2009년의 경우 전체 고객의 3분의1가량이 레즈비언 커플이었다고 밝혔다. 10년 전의 7%에 비해 거의 5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출생증명서 양식도 바뀌었다. 새로운 양식에 포함된 설문지는 유아가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지, 다시 말해 자연출산인지, 인공수정인지, 또 인공수정일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생식기술(reproductive technology)을 이용했는지를 묻고 있다.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 역시 이전처럼 쉽지 않다.
로라 애시모어(38)와 제니퍼 윌리엄스(40) 자매는 맬로리가 태어난 후 이 문제를 논의했다.
우선 동성애자인 제니퍼가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제이미슨(6)과 맬로리의 관계를 분명히 해두어야 했다.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났으니 둘은 분명 아빠가 다른 남매지간이지만 맬로리가 애시모어 부부에게 입양됐으니 법적으로 사촌간이다. 이런 상황에선 서로 다른 생물학적 족보와 법적 가계도, 혹은 감정적 가계도가 나올 수 있다.
가계도는 유산배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대충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수개월 간에 걸친 논의 끝에 이들은 맬로리를 애시모어의 딸, 제니퍼의 조카로 ‘공식 분류’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맬로리의 ‘생부’인 정가 기증자는 가계도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이처럼 어지럽게 얽힌 가계도는 어린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혼란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지난해 그린 에이커스의 머피 교사는 두 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두 아이들 가운데 ‘싱글 맘’의 아들이 친구에게 “나도 여동생이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함께 놀던 계집아이가 “아빠가 없는데 어떻게 여동생이 있느냐”고 제법 되바라지게 따지고 들었고 잔뜩 기분이 상한 사내아이는 “정자 기증자인 아빠가 여동생을 낳았다고 엄마가 말해주었다”고 답변했다.
미시간주 캐스시팅에 거주하는 수우 배틀과 밥 배틀 가족도 ‘계보’가 간단치 않다.
네 명의 자녀들 가운데 맏이인 애디(8)는 ‘전통적인 방식’, 도리(5)는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났고 나머지 두 젖먹이는 입양됐다.
자녀 네 명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각각 다르다는 애기다. 그러나 배틀은 “유전적 고리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들은 100% 우리 가정의 가계도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배틀 부부도 도리의 ‘생부’로부터 생명을 얻은 그의 이복 형제자매들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들은 난상토론 끝에 같은 정자 기증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도리의 이복 형제자매로 간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매사추세츠주의 잡지 편집장인 라브 오쿤(61)은 16년 전 레즈비언 커플에게 정자를 기증했다. 당시 오쿤은 장기간 동거했던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나은 두 명의 자녀와 현재 아내가 데려온 두 명의 의붓자식이 있었다.
오쿤은 패트리샤 코거트와 린 델버그에게 자신이 기증한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의 양육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해주어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코거트는 그의 정자를 빌어 루시나와 나다니엘을 출산했고 델버그는 이들을 입양했다.
오쿤은 노모의 반대로 루시나와 나다니엘을 멀리했으나 2004년 모친이 타계한 후 두 아이를 자신의 가계도에 포함시키는 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편 제니퍼 윌리엄스와 로라 애시모어는 사촌 간으로 ‘결정’된 맬로리와 제이미슨이 친남매처럼 지내는데 만족해 하고 있다.
제이미슨은 집에서는 가끔씩 맬로리를 “내 여동생”(my little sister)으로 부른다. 그러나 일단 학교에 가면 이들의 사이는 사촌으로 멀어진다.
애시모어와 윌리엄스 자매는 둘 사이의 ‘합의’로 가계도를 정리하긴 했지만 후일 맬로리와 제이미슨이 사촌이 아니라 오누이로 남기를 원한다면 문제가 꼬일 수도 있다.
그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애시모어는 “난 상관없다. 후일 아이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선선이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이어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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