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불장난’ 세태에 애인 없는 사람들은 축에도 못 낀다지만, 필자는 꼬마 때부터 불장난을 즐겼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놓아 쥐와 해충을 박멸하는 절기행사이다. 아이들은 이날 철사로 꿴 깡통에 불을 담아 휘두르다가 공중으로 던진 후 캄캄한 밤하늘에 불붙은 깡통이 그리는 포물선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올렸었다.
불구경은 원래 큰 재미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도 있다. 서울 충무로의 22층 대연각 호텔이 1971년 크리스마스 날 불길에 휩싸였을 때는 TV가 실황중계방송을 했을 정도다. 매트리스에 엎드려 뛰어내렸다가 중간에 뒤집히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 총 168명의 사망자를 낸 세계 최악의 호텔화재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시골에서 깡통 불꽃놀이나 즐기며 자랐던 필자는 장성한 후 헨델의 인기 밴드뮤직인 ‘왕궁의 불꽃놀이(Royal Fireworks)’ 모음곡을 들으며 영국에선 200년도 훨씬 전에 왕궁에서 쥐불놀이를 즐긴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70년대 말 LA에서 연수하는 동안 디즈니랜드에 놀러갔다가 요란떨떨한 불꽃놀이를 처음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중에 LA에 정착한 뒤에도 독립기념일과 12월31일 밤 샌타 모니카 해변 등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찾아다니며 구경했다. 특히 헐리웃 볼 야외음악당의 불꽃놀이가 인상적이었다. 독립기념일에 맞춘 시즌 개막 프로그램으로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말미에 폭죽이 무대 위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며 밤하늘을 장식한다.
불꽃놀이는 압축된 화약과 금속가루의 폭발·연소로 생겨나는 빨강, 파랑, 초록, 오렌지, 자주색 등의 화려한 꽃불과 폭음 및 연기를 보고 들으며 즐기는 오락이다. 작약, 국화, 달리아 등 각종 꽃모양부터 버드나무, 팜 트리 등 나무모양도 있다. 꽃불 제조기술(pyrotechnic)이 발달됨에 따라 동그라미, 하트, 클로버, 웃는 얼굴 등도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불꽃놀이 역사는 한국의 깡통 쥐불놀이보다도 길다. 7세기에 서양이 아닌 중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나침판, 제지술, 활자인쇄와 함께 중국의 4대 발명품에 끼는 화약을 이용한, 당시로는 첨단놀이였다. 음력설, 추석 등 명절에 귀신을 쫓고 부귀영화를 비는 상류층 오락이었던 불꽃놀이는 14세기 이후 명나라 때부터 평민들의 결혼식, 생일잔치, 개업식 등에도 등장하는 대중놀이가 됐다. 지금도 중국은 폭죽의 세계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공중 불꽃놀이 외에 지상 불꽃놀이도 있다. 여러 개의 윤전 바퀴(Catherine Wheel)에 폭죽을 부착시키고 돌려가며 폭발시키는 방법이다. 지난 6월18일 몰타에서 벌어진 불꽃놀이에 사용된 바퀴는 직경이 32미터나 돼 기네스북에 올랐다. 2006년 연말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불꽃놀이에서 터뜨린 폭죽은 물경 6만6,326개나 돼 세계최고 기록을 세웠다.
요즘엔 불꽃놀이가 거의 무소부재다. 일본에선 여름철에 거의 매일(8월에만 200여회)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싱가포르에선 8월9일 독립기념 국제 폭죽쇼가 열리고, 영국에선 국왕 제임스 1세 암살모면 기념 불꽃놀이(11얼 5일)가 전통을 자랑한다. 한국에서도 예전에 쥐불놀이가 벌어졌을 듯한 63빌딩 옆 한강 둑에서 매년 가을 세계 불꽃축제가 펼쳐진다.
미국의 불꽃놀이는 독립기념일의 상징 같지만 사실은 독립 전부터 할로윈 등 절기 때 펼쳐졌었다. 1777년 제 1회 독립기념일과 1789년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 취임식에 불꽃놀이가 펼쳐지면서 주요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단골 메뉴로 끼게 됐다. 미국의 최대 불꽃놀이는 4월중순 켄터키 더비 경마대회 전야제로 열리는 ‘썬더 오버 루이스빌’ 폭죽 쇼다.
시애틀에서도 오는 4일 밤 레이크 유니온의 가스웍스 공원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작년에 스폰서를 못 구해 무산될 뻔 했다가 범사회 모금운동으로 기사회생했다. 한인들도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구경을 즐기며 잠시나마 불경기 시름을 떨쳐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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