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소리? 날 사랑한댔잖아?
▶ ■ 미국 여배우의‘한국인과 사랑-결혼 스토리’
“부모님이 내가 어릴 적부터
늘 신신당부하신 말씀이야”
평생 인정 못받을 사랑인가…
처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 다음날 아침, 나는 벅찬 행복감 속에 승용 정(Seung Yong Chung)과 나란히 샌타모니카의 브렉퍼스트 바로 향했다.
그와 나는 벌써 수 주째 함께 지냈지만 LA라는 이 찰나적인 도시에서 누군가의 곁에서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비록 정기적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확실한 관계’임을 입증해 주는 징표가 아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부리토로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슬쩍 농담처럼 승용에게 물어보았다. “자기 말이야, 언젠가 날 버리고 아시아 여자를 선택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이 간단한 질문에 승용이 주춤댔다. 내 얼굴에서 막 미소가 걷히려는 순간, 그의 답변이 돌아왔다. “난 한국여자와 결혼해야 해.”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지금 나 말고 또 다른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거야? 그럼 혹시 아까 밖에서 본 그 여자?
내 어지러운 심사를 읽었는지 승용이 황급히 덧붙였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 신신당부하신 말씀이야.”
이건 또 뭐야. 설마 메릴랜드에서 성장한 프래터니티 브라더 출신의 풋볼광 승용이 중매결혼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어젯밤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그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부모님이 우리 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실 거야. 아마 끝까지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으실 지도 몰라.”
그때서야 내 머릿속은 대재앙의 위기감에서 벗어났다. 이보다 더 나쁜 소식이 나올 리 있겠느냐는 이판사판의 오기에서가 아니라 그의 얼굴에서 사랑을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전사’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나는 그의 손을 그러쥐고 “내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혼자 잘 살아 왔으니 앞으로도 자기 부모님의 인정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해 주었다.
어느 문화권이든 부모들은
자녀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인종적 경계선을 강요했다
놀랍게도 우리 부모까지도…
그의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고 우린 그 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눈치를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까지 또박또박 지적한 후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승용을 ‘만드신 분들’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을 정중히 모시겠다”는 약속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승용이 빙긋이 웃으며 “실은 몇 주 전부터 호의적인 친척들을 동원해 모종의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일랜드인과 이탈리아인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은 외국인 며느리를 그의 부모님이 최소한 미워하시지 않도록, 또 그를 버린 자식으로 내치시지 않도록 친척들을 통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두 분께 조직적으로 흘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참 기막힌 작전”이라고 맞장구는 쳐주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나름대로 작전을 짜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타인종과 결혼했거나 교제중인 친구들을 상대로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양측 부모님들 중 누군가의 반대로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지부터 알아보았다.
점차 범위를 넓혀간 탐문과정에서 난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인종을 기준으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비밀스런‘훈령’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중학교(middle school)에 진학하자 어머니는 “이 다음에 네가 결혼하려는 사람이 독일인이나 아일랜드인, 아니면 프랑스인이거나 유대인이라도 상관없지만 흑인이나 푸에르토리코인이라면 집에서 내쫓길 줄 알라”고 겁을 주었다.
이민 1세인 어머니는 뉴욕의 맨해턴과 브루클린 이웃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던 흑인과 푸에르토리코인들이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을 뿐더러 식품가게를 운영하던 할아버지에게 툭하면 종주먹을 들이대던 사람들이라는 ‘정지된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변 친구들을 상대로 한 조사를 통해 나는 이들 역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올바른 배우자감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되는” 기피대상에 대한 지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조사에 응한 한 유대인 친구는 “동족 여성과 결혼하지 않으면 짤린다”고 말했다. 경제적 지원이 끊긴다는 게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정신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였다.
독일인과 인도인을 부모로 둔 또 다른 친구는 “내가 혼혈이기 때문에 엄마는 어떤 인종이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인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배우자감 선택에 부모가 가하는 제한이 아니라 이를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하는 친구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교육과 사업 등 모든 부문에서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사랑의 대상을 제한하는 예외 조항을 첨가해 이 같은 가치를 훼손한다. 친구들의 부모님들처럼 교육수준이 높고 진보적이며 민주적인 분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백악관에 흑인 남성이 입주한 상황에서도 미국이 인종주의에서 자유롭다는 주장은 동화 속 얘기처럼 허황하다.
비록 이전 세대의 편견을 수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사랑할 자격을 지닌 대상을 제한하는 추하고 낡은 경계를 존중하는 한 인종주의의 벽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개인적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경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 그 경계를 확대하는 셈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그랬지만 승용과의 관계를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애초부터 나를 반대하는 줄 알면서 평생 인정받지 못할 관계를 계속해야 할지, 우리야 그렇다 쳐도 그와의 사이에 태어나게 될 혼혈 자녀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승용의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주셨고 그와의 관계는 샌타모니카 브렉퍼스트 바 훨씬 이후까지 이어졌다. 오늘 아침도 난 그의 곁에서 눈을 떴다. 그 새 벌써 7년의 세월이 지났다.
물론 예전처럼 눈뜨기 무섭게 브렉퍼스트 바로 가지는 못한다. 세 아이를 서둘러 학교에 보내고 우리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일렬로 줄지어 미니밴에 올라타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며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반 아시안 반 백인인 우리 아이들에게 누군가 “너희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할까 두렵다. 어미의 밤잠을 설치 게 만드는 걱정거리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이 글은 뉴욕타임스 6월5일자 ‘모던 러브’ 난에 게재된 다이앤 파의 칼럼을 발췌해 정리한 것입니다. 다이앤 파는 LA에 거주하는 여배우 겸 작가입니다. 저서로 ‘Kissing Outside the Lines: A True Story of Love and Race and Happily Ever After’등 다수가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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