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곁을 꿋꿋이 지키며 외조해온 에든버러공(필립공)이 10일 아흔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는 너무 튀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여왕인 아내의 뒤에서 숨죽여 지낼 수 만도 없는 이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도 특별한 삶을 60년 가까이 살아왔다.
영국 왕실에서 전통과 관습을 따르면 별 탈이 없지만 `여왕의 배우자’라는 독특한 위치 때문에 그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누구에게 물어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스스로 여왕 배우자의 교본을 만들어 가며 60년을 꾸려왔다.
필립공은 9일 저녁(현지 시간) BBC 1 특별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그림자 같았던 외조의 삶에 익숙한 듯 자신에 관한 이야기와 성취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거듭된 질문에 "여왕의 남편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례가 없었으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그는 외조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필립공은 영국 역대 왕과 여왕을 통틀어 배우자로서 60년 가까운 최장 기록을 갖고 있다.
외국으로 떠도는 내쫓긴 그리스 왕실의 일원이었던 필립왕자는 어린시절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을 오가며 생활했고 10세 때 직계 가족들과 헤어져 살았다.
다트머스 해군대학 사관후보생 때 조지 6세 국왕과 함께 학교를 방문한 13세 였던 엘리자베스 공주를 처음 만났다.
엘리자베스가 먼저 훤칠하고 활기찬 필립에게 한눈에 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지만 이들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필립왕자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고 누나가 나치 지지자와 결혼했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필립왕자는 결국 사랑을 위해 그리스 왕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귀화해 1947년 11월 결혼했고, 엘리자베스는 1952년 2월 6일 왕위에 올랐다.
필립공은 연간 수백건의 여왕 공식 행사를 따라다니면서도 자선 단체를 중심으로 800개가 넘는 기관의 일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그의 활동 중에 자신의 작위를 딴 `듀크 오브 에든버러 상(償)’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이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꼽힌다.
1956년 처음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의 모험심을 키우고 봉사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자기개발 및 탐험 활동으로 지금까지 세계 700만명 이상이 과정을 밟았다.
필립공은 또한 초창기 환경 운동을 활발하게 이끌었던 선구자로 통한다.
그는 세계 야생동물 기금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자연보호 등의 활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필립공은 "자연환경 보호와 단순한 동물 애호와는 차이가 있다"면서 "인구 증가는 자연보호의 가장 큰 도전이고 결국 자발적인 산아 제한이 자연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여왕이 스스로 자신의 힘의 원천이자 안식처라고 했던 필립공은 이제 `유통기한’이 다 되기 전에 긴장을 좀 풀고 활동을 줄여 나가기를 원한다고 작은 소망을 피력했다.
BBC는 필립공이 90세가 됐을지 모르지만 그가 끝나지 않았음은 너무도 분명하다는 말로 특별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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