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스트’ 원작 만화가 형민우
"떨리죠. 기쁘고요. 제 작품이 영화화된 게 꿈만 같네요."
형민우 원작의 ‘프리스트’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한국 만화다. 서구와 아시아의 스타일을 잘 결합했으며 독특한 스타일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영화로 만들어지게 됐다.
다음 달 개봉되는 ‘프리스트’는 신의 규율에 따라 통제되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가족을 잃은 프리스트가 신의 뜻을 거역하고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의 액션 영화다. 시대적 배경도 서부 개척시대에서 미래로 바뀌는 등 원작과 영화는 배경이나 캐릭터, 중심 이야기 등이 상당히 다르다.
23일 왕십리 CGV에서 만난 형민우는 오른 팔에 정의(Justice), 왼팔에는 자비(Mercy)라는 영어 문신을 새기고 해골 무늬 반지를 끼는 등 남다른 패션으로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원작과 영화의 갭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원작 만화는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이라면 영화는 현대적이고 SF 느낌이 가미됐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훼손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친한 친구들도 기분 나쁘지 않으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너 같으면 할리우드에서 영화 만든다는데 기분 좋겠냐 나쁘겠냐?’라고 되물었죠."
그는 "난 원작자일 뿐이고 영화 만드는 건 할리우드의 몫이다. 영화는 제2의 창작물"이라면서 "할리우드가 비즈니스 전략을 고려했을 거란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1인칭 액션 게임이나 B급 영화를 만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프리스트’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프리스트’는 자신의 문화적 소양의 집대성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여러 B급 영화나 소설 같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오마주랄까요."
"나만 좋아하지 누가 좋아할까?"라는 회의도 들었지만 "과감하게 미친 척 해보자"고 마음먹고 잡지사 편집장을 설득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대중과 괴리된 멍청한 짓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죠. 인기순위도 항상 꼴찌였죠. 어차피 큰 기대감 없으니 흥행 의식 안 하고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어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스트’는 16권이 출간돼 국내에서 50만부가 팔렸으며 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세계 33개국에서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2000년대 초부터 LA에 있는 만화출판사 도쿄팝이 할리우드와 접촉해 영화화를 추진했고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금의 영화가 나오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웨스턴 호러라는 ‘짬뽕’ 장르를 만들어내면서 최대한 외국적인 정서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죠. 한국에서는 이국적인 정서가 높은 점수를 받은 걸로 아는데 제가 아무리 장르에 충실하려고 했다지만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 한국의 드라마적 정서가 들어간 것을 미국에서는 긍정적으로 본 것 같아요."
영화로 나온 ‘프리스트’에 대해서는 "무겁고 어둡고 심해에 가라앉은듯한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고 평했다.
형민우는 어릴 때부터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방 안에 틀어박혀 연습장을 몇 권씩 만화로 채웠을 정도로 만화에 푹 빠졌다고 했다.
대입 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굴착기를 몰면서 방황하던 그가 만화를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것은 25살 때였다. "사실 만화가는 힘겹고 궁핍해 보여서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잘하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만화를 그려 공모전에 도전했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 일본만화뿐만 아니라 한국만화도 약진하던 1990년대 중반은 신인에게 기회가 열려 있었던 때라고 그는 회상했다.
공모전을 통과하고 나서 처음 한 작품이 어렸을 때부터 했던 유도를 소재로 한 ‘열혈유도왕전’이었다. 그다음 작품은 ‘태왕북벌기’로 KBS에서 방영될 사극 드라마 ‘광개토대왕’의 바탕이 됐다.
‘태왕북벌기’ 다음으로 나온 그의 대표작 ‘프리스트’는 연재가 오랫동안 중단된 상태다. 형민우는 "작품에 몰입해서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위안을 삼는다"면서 "’프리스트’를 흐지부지 끝낼 생각은 없다. 부담감이 덜 해지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고스트 페이스’라는 5권 분량의 작품을 끝냈고 이문열의 소설 ‘초한지’를 만화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만화보다 출판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버틸 때까지 최대한 버텨보려고요. 온라인에도 좋은 작품이 많은데 빛을 못 보고 사라지는 작품이 많아요. 책으로 존재해야 만든 사람들의 노고가 손에 쥐어지는 건데 온라인에서는 보고 재미없으면 꺼버리는 식으로 소모되는 것 같아요."
kimy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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