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싱글벙글이다.
영화 ‘나는 아빠다’로 생애 첫 악역 변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김승우(42)의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방송을 통해 이따금씩 공개되는 아내 김남주, 두 자녀와의 가정생활도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최근 몇 년간 드라마 ‘아이리스’와 ‘포화 속으로’에서 호평을 받았고 조만간 주연을 맡은 MBC 월화드라마 ‘리플리’의 방영도 앞두고 있다.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승승장구’처럼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승승장구인 김승우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여년의 연기 생활 동안 생애 처음으로 맡은 악역이라 맘고생이 심했다며 위경련 때문에 이틀 동안 입원한 사연도 들려줬다.
영화 전반의 액션신을 직접 소화하느라 숨을 제법 헐떡였다는 김승우는 영화 시작 부분 몸을 날려 뒷발차기를 시원하게 소화하는 신이 부감으로 촬영돼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일에 대한 고민을 아내 김남주와의 대화에서 대부분 해소한다며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와의 동행에서 오는 만족감을 표한 그는 "연기하는 미혼 후배들에게 배우나 관계자들과 만나라고 늘 권한다. 나를 이렇게 완벽히 이해해주는 아내를 못 만났다면 지금의 김승우는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 악역 도전은 의외다.
▲ 21년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범법자 역할이 처음 들어왔다. 범법 행위를 하는 시나리오를 일생에 처음 받아 봤다. 한 마디로 첫 경험이다. 받자마자 뜨거운 열정으로 할 수 있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범법 행위를 하는 놈인데 그 이유가 아빠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감성은 내가 아니까 해보자 싶더라. 나도 살면서 구멍가게에서 물건도 훔쳐보고 노상 방뇨도 하고 소소한 나쁜 짓 적당히 해봤다. 전혀 무관하지 않겠더라.
- 작품을 고를 때 기준이 뭔가.
▲ 배우들은 주로 뭔가에 꽂히거나 씌울 때 작품을 고르는 것 같다. 물론 현명한 배우들이야 감독, 제작사, 시나리오 다 보겠지만 나는 무조건 시나리오만 본다. 어떤 신 하나에 꽂혀 고른 적도 있다. 그래서 내 필모그래피가 지저분한가.(웃음) 물론 매니저들이 말릴 때 하지 말았어야 할 영화도 있다. 그 때는 무모하고 무지했을 수 있지만 젊은 나이에 뭔가 재고 할 상황은 아니잖나. 내가 한 행동이니 책임은 당연히 내가 진다.
- 김승우 하면 연기자의 고충보다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이미지가 강하다.
▲ 어쩌겠나. 다 자업자득이다. 강렬한 연기로 각인시키거나 임팩트 있는 연기를 못했기 때문이거나 흥행 타율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대중들에게 파괴력 있는 연기를 못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일을 계속 하고 있잖나. 이 분야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것도 쉽지 않다. 나름 시키는 건 잘 하는 놈이다. "저 놈은 늘 행복할 거야, 유쾌할 거야"라는 이미지도 쉽게 깨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남들에게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은 더욱 못보여 주겠다. 현장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허허’ 웃는 것도 그런 연유다.
-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당시 연기 고민으로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잔다고 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 사실 한 작품을 시작할 때 그 캐릭터가 몸에 익기 전에는 괴로워서 죽는다. 잠을 거의 못 잔다. 나중에 지쳐서 뻗는다. 내가 그 인물로 살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연기가 되겠나. 심지어 코미디를 할 때도 쉽지 않다. 누구보다 현장에서 치열하다니까. 더 힘든 건 후배들 앞이니까 현장에선 늘 하하하 웃어야 하는 거다. 이번엔 사람까지 죽이는 놈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결국 전라도 촬영 때 급성 위경련이 와서 하루 반을 입원해 있었다. 현장에서 앓아 본 건 처음이다.
- 집안이 꽤 잘 살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 믿으니 환장하겠다. 중3 때까지 복도형 방2개짜리 서민아파트에 살았다. 연탄가스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 보며 자랐는데 이게 부르주아냐. ‘무릎팍도사’에 나가서 말했는데 편집돼서 나가지도 않더라.
지난 몇 년 전 2년 간 일이 없어서 수입이 없었는데 건물 샀다고 기사가 나가더니 ‘부자 맞다’며 악플이 무수하게 달리더라. 빚도 많다.
-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인물이다. 심장병 걸린 딸을 살리려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첫 악역 변신이 어렵지 않았나.
▲ 원래 3~4억대의 저예산 시나리오였다. 원제가 ‘놈의 역습’이었는데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슬러시 영화가 됐을 거다. 대중적으로 좀 더 친절한 작품으로 선회됐다.
한종식은 절대악의 존재였다. 생활력이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엔딩부 대사만 해도 ‘**, 목말라’였는데 감독과 상의해서 ‘내 딸이 보고 있잖아’로 바꾸었다.
항상 새로운 인물을 맡으면 그 인물이 되기 위해 일기를 쓴다. 이번 한종식도 마찬가지다. "민지(김새론)가 아프다. 눈물이 난다. 울지 말아야지" 이런 식이다. 현장에서는 항상 한종식의 감정으로 살려고 했다. (김)새론이와 붙는 신이 많지 않았지만 새론이를 한 번이라도 만나고 촬영하는 날은 감정이 넘쳤다.
눈물이 절제되지 않는 순간도 많았다. 골프장에서 장기밀매 황사장을 만나는 장면은 하도 울다가 찍어서 대사 전달이 제대로 안될 정도였다.
- 역할에 몰입했다가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승승장구’ 녹화를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것 말고는 늘 촬영장에서 살았다. 그런 만큼 한종식의 감정을 털어내는 것이 쉽지 않더라. 촬영 마치고 몇 달 뒤 겨우 입에 붙은 욕도 털어 내고 정신적으로 힘든 걸 털어내는 과정을 거쳤는데 편집하며 영화를 다시 보고 개봉이라고 홍보 다니고 하다 보니 다시 욕이 툭툭 나온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린 아이 감성이다. 감정이 스펀지 같다. 평소 다큐멘터리만 봐도 눈물을 펑펑 흘리는 편인데 요즘 힘들다.
-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일반인들은 겪기 힘든 감정을 경험하기 때문인가 보다.
▲ 그래서 배우들은 정상적이지 않다. 한자로 사람인 앞에 아닐비가 붙지 않나. 자꾸 정상적이지 않은 감정을 더 발전시키다 보니 돌아이가 되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촬영할 땐 정말 그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 되지 않나.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전문적 카운슬링을 받는 게 명문화돼있다. 우리 배우들 중에도 그런 카운슬링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제는 집에 완벽하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그런 치료 횟수가 많이 줄었다. 미혼 후배들에게 늘 권하는 게 우리 일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 특히 배우나 관계자하고 사귀라고 한다. 나를 이렇게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늘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 아내 김남주와는 요즘도 신혼처럼 알콩달콩해 보인다.
▲ 글쎄, 아직도 신혼이라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 일하느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끈끈해진다.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거잖나.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든든해진다. 연애할 때 못한 얘기들도 실컷 할 수 있고.
- 욕심이 나는 캐릭터가 있나.
▲ 역할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심은 있다. 40대 들어 뮤지컬에 도전도 했고, 예능 프로그램 MC도 맡아 봤다. 도전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훨씬 더 뜨거운 열정이 생긴다.
- 10년 뒤 목표는.
▲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내가 구단주로 있는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의 배우들을 모아서 ‘오션스11’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장르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말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광고를 함께 찍을 때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꼭 실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아이닷컴 모신정 기자 msj@hankooki.com
사진= 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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