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범(31)이 연봉 10억 계약을 눈 앞에 둔 보험왕 역을 맡은 영화 ‘수상한 고객들’로 돌아왔다.
’수상한 고객들’은 류승범, 성동일, 박철민 등 대표 코믹 배우들의 총결집 탓에 코미디의 외피를 썼지만 보험왕 배병우(류승범)가 자살 시도 경력이 있는 수상한 고객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는 감동이 따르는 휴먼스토리이다.
지난해 주연을 맡은 ‘방자전’, ‘부당거래’를 연달아 히트시킨 후 30대 초반 또래 배우들 중 가장 좋은 흥행 타율을 자랑하는 류승범에게 ‘수상한 고객들’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의 영화다. 성동일, 박철민 등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의 도움은 있었지만 그동안 유독 버디 무비에서 강세를 보였던 류승범이 영화의 90% 이상의 분량에 출연할 만큼 확고히 단독 주연으로 나선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개봉 전 이뤄진 한국아이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류승범은 호불호가 분명했던 작품 속 이미지와 달리 매우 철학적이고 진지한 태도로 답변에 신중을 기했다.
류승범은 ‘수상한 고객들’의 출연 소감에 대해 "출연 분량이 많다 보니 혼자서 여러 배우를 상대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오히려 반대의 해석을 했죠. 자살을 꿈 꾸는 전 보험회사 부장, 4명의 아이들을 둔 주부, 틱 장애를 지닌 청년 등 자살의 위험에 놓인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따라 다니고 자연스럽게 물결을 탔어요. 그 사람들에게 내던져지고 상대 배우들의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다보니 연기가 편해지더군요"라고 말했다.
연기 경력 10년차에 30대의 나이가 되니 오히려 혼란스럽다며 남자 배우가 진정성을 가지는 40대를 멋지게 받아 들일 꿈을 꾼다고 했다. 류승범은 주위 지인들에 대해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는 동반자들이 여러 분 있다. 최민식 선배나 황정민 형, 우리 형(류승완 감독), 공효진 양 등이 그런 사람이다. 특히 공효진 양은 배우로서도 신앙인으로서도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 ‘수상한 고객들’을 선택한 이유는.
▲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당시 자살이 화두였다. 내 주변에도 자살한 분이 있었고 매스컴에도 연일 기사가 나왔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매우 비관적인 상황에 빠진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난이나 특수한 가정 환경 때문에 주인공들이 자살을 고민하는데 가족을 중심으로 소통하려는 내용이 와 닿았다.
- 극 중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들의 심경을 직접 느낀 적이 있나.
▲ 나도 그들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왔다.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또한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들 아닌가. 어려운 환경의 분들이 매스컴 등을 통해 많이 다뤄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전히 많다. 그런 분들과 소통하고 웃고 울면서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위로를 하고 싶었다.
- 언론시사회 당시 답변 태도가 논란이 됐다. ‘부당거래’나 ‘방자전’ 시사회에서 활기찬 태도와 비교되더라.
▲ 점점 내 생각에 대해 질문 받고 전달하는 일에 서툴러진다. 내 성격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말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부당거래’ 때는 (류승완)형도 있고 절친 (황)정민이 형도 있고 해서 자연인 류승범이 드러났던 것 같다. 어색한 시간과 공간을 잘 못 견딘다. 술자리에서도 어색하면 그냥 사라진다.
- 최근 인터뷰 사진에 활짝 웃는 모습이 없다.
▲ 팬들이 내 웃음기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진짜 웃음을 웃는 게 힘들다. 방사능 비가 와서 그런가.(웃음) 성격상 거짓말을 못한다. 어색하면 어색한 표정 밖에 안 나온다. 마음으로 진짜 웃고 싶어야 웃음이 나온다. 자연인 류승범과 배우 류승범 안에서 밸런스를 찾아야 하는 건 내 몫이다. 다만 직업 자체가 내가 나로만 존재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항상 살얼음판 같다.
- 자연인 류승범은 어떤 모습인가.
▲ 며칠 전 아버님 친구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전세계 60억 인구 중에서 내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의식, 내 생각을 가진다는 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내 직업이 환경에 지배되고 공동체와 해야 하는 일인데 자본이나 여러 환경에 휩쓸리는 상황 속에서 중심을 갖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어떤 캐릭터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야 하지만 또한 나 만의 뿌리나 아우라를 갖는 게 중요하다. 많은 부분 부족하고 아직 애송이 같지만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
- 황정민이 연기는 철저하게 훈련에서 나온다는 연기론을 뒤흔든 배우로 류승범을 거론하던데.
▲ 정민이 형이 본 모습도 나의 일부분일 거다. ‘사생결단’ 때 에피소드 때문에 형에게 그런 인상이 박혔나 보다. 당시 정민이 형 시나리오는 바로 화장실에서 써도 될 만큼 휴지가 돼 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읽고 분석하고 했다는 얘기다. 형이 나한테 자주 ‘야, 책 좀 봐라’라고 말하곤 했다. 정말 지독하게 훈련한다. 나와는 다른 부분이다. 나도 책을 분석하고 연구도 하지만 본능처럼 움직이고 야생적으로 상황에 나를 내던지는 편이다.
- ‘페스티발’의 백진희는 류승범의 전체를 아우르는 탁월한 분석력에 놀랐던데.
▲ 작품마다 다르게 움직인다. 여기서는 야생마로 뛰어야 한다면 뛰고, 계산이 필요하고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면 또 그렇게 움직이게 된다. 감독님들이 내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 한다. 사람들이 내가 (류승완)형 작품에 나오면 날 것 같다고 하는데 반대다. 류 감독은 장르 영화를 주로 연출했는데 철저히 계산하는 사람이다. 커트가 많기에 연기도 충분한 계산을 하고 해야 한다. 콘티에 철저히 따른다. 항상 보여지는 일들에는 이면의 것이 존재한다.
- 40대에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 지금은 혼란한 것 같다. 내 성격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비뚫어져 있다. 엇나가 있다. 이런 비뚫어짐에 기름을 칠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지 아니면 성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정쩡하다. 미래도 준비하고 과거도 돌아봐야 한다. 남자 배우가 진정성을 가지는 나이는 40대다. 얼굴에서 또 삶에서 진짜 남자의 향기가 나는 나이다. 주위에서 지난 10년 동안 배우로 살면서 내 얼굴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얼굴로 바뀌었는지 역추적해서 40대의 얼굴, 모습을 만들어가고 싶다.
- 롤모델로 삼은 배우가 없을 것 같다.
▲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들은 많다. 특히 최민식 선배와 황정민 형을 좋아한다. 최민식 선배는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너무 즐겁고 그 분의 얘기에 영향도 많이 받는다. 최 선배와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신인상을 받았을 때 처음 만났다. 영화제 뒷풀이 자리에서 최 선배가 영화를 잘 봤다고 칭찬을 하며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 그런데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 지 "제가 알아서 판단하겠습니다. 모가 되든 도가 되는 내가 두들겨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란다. 잘 기억은 안난다. 그런데 선배는 내 얘기를 그냥 들어주셨다. 그동안 계속되는 만남에서 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봐주신다. 엄청 깨어있는 분이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다. (황)정민이 형도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는 동반자다. 내 친 형도 그렇고, 공효진 양도 그렇다.
- 공효진과 헤어졌을 당시 영화 ‘가족의 탄생’에 헤어진 연인으로 출연한 특이 경력이 있다.
▲ 사람이니까 둘 관계 안에서 쿨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배우대 배우로서는 철저하게 쿨하다. 그 친구가 가진 배우로서 매력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매우 부럽고 또 팬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 친구 입장에서도 나를 배우로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배우들끼리 연인이라는 뱃지를 떼고 연기로 붙어보는 재미가 있다.
- 신앙 생활도 함께 하고 있잖나.
▲ 그 쪽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겨우 한 반에서 30등 안에 드는 학생의 경우에 가깝다. 매우 부끄럽다. 반대로 내 여자친구는 삶 자체가 신앙적이다. 축복 받은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도 매우 부럽고 존경한다.
- 혹자는 화내는 연기가 가장 섹시한 배우로 류승범을 꼽더라. 외유내강 형의 연기에 욕심을 부릴 때도 됐는데.
▲ 배우라는 직업이 재미있는 게 어떤 캐릭터를 빌더라도 결국 자기 자신을 발가벗게 된다. 외유내강형 캐릭터가 바로 그런 캐릭터인 것 같다. 지금도 지르지 않는 호흡 속에 녹아나는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 스스로가 외유내강 인간이 돼 있어야 그런 캐릭터도 가능해진다. 어떤 것이든 흡수해내고 싶고 나 스스로가 무한했으면 좋겠다. 큰 욕심일 수 있지만 말이다. 외부 평가에 의해 위축될 때도 있겠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개척하는 길이 외롭다 해도 대중이 원한다면 가야하지 않겠나.
- 배우로서 목표는?
▲ 어느 해인지 모르지만 로버트 드니로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영화는 관객이 만드는 것이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배우는 후대가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더라. 그 때 나도 후대에 남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 배우는 죽는 날까지도 과정에 있다. 죽어서도 완성되지 못한다. 배우로서 한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존재가 남는다는 것 만큼 황홀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필름으로 남는 게 아니라 무형의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죽어서도 편하게 눈 감지 않을까.
한국아이닷컴 모신정 기자 msj@hankooki.com
사진= 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