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티스트들 훌륭..음악 혼에 감명받아"
퀸시 존스는 8일 "한국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고 앞으로 한국과 협력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방한한 그는 이날 마포구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음악산업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을 묻는 말에 "한국의 뮤지션들을 만나보니 아주 대단했다. 재즈, 알앤비(R&B), 힙합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훌륭한 아티스트가 많다. 타이거JK와 보아, YG 소속 가수들을 만났는데, 모두 아주 훌륭했다"며 "그간 중국과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했었지만,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연방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한국 가수들의 세계 시장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나는 원래 칭찬에는 인색한 사람"이라고 단언한 뒤 "한국 가수들의 성공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 아티스트들은 이미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안무도 훌륭하고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데다 음악적인 열정도 갖고 있어 큰 감명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 가수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방안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성공하려면 아티스트가 어디서 왔느냐를 불문하고 소통을 통해서 가능하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관심을 끌고 홍보를 통해 노출해서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왔다. 나는 비틀스가 미국에서 성공하기 전에 만났는데, 매체가 달랐을 뿐이지 그들도 노출과 홍보를 통해 성공 거둘 수 있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 음악 전반에 대해 "대단하단 말 이상의 칭찬이 없을 것 같다. 뮤지션들의 제작 과정에서 전문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음악에 혼이 느껴진다는 점에 감명받았다. 한국 음악의 미래는 밝다"며 "내가 원래 칭찬에 인색해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다 대단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수많은 음악을 만들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그것 자체에서 영감을 받는다. 자녀, 친구, 가족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답했다.
함께 작업했던 수많은 가수 중 가장 훌륭했던 가수로는 아레사 프랭클린,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내트라, 마이클 잭슨 등을 줄줄이 언급하며 "특별히 한 명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모두 그냥 좋은(good) 게 아니라 위대하다(great)"고 말했다.
그는 또 훌륭한 프로듀서의 역할은 영화감독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서는 음반에 참여하는 여러 아티스트, 엔지니어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티스트와는 얼마나 신뢰하는 관계이냐,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서로 영혼을 교감해서 최고의 음악을 만들자는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훌륭한 앨범이 나옵니다. 얼마나 팔릴까 계산하지 말아야 해요."
존스는 음악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는 "내일(Tomorrow)"이라고 답해 좌중을 웃게 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일할 생각이에요.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랭크 시내트라와 공연할 때 그가 나에게 그랬죠.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라고요. 은퇴라는 것은 내 사전에 없습니다."
이번에 CJ E&M 음악공연사업부문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대금독주, 사물놀이, 판소리, 한량무, 판굿 등의 공연을 비롯해 그의 음악을 국악으로 재해석한 크로스오버 공연도 관람했다.
특히 판소리와 판굿을 본 뒤에는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CJ 측이 전했다.
아울러 그는 홍대의 클럽 문화를 살펴봤으며 김형석, 정원영, 정지찬, 임진모, 박칼린 등 음악 산업계의 오피니언 리더와 아티스트, 프로듀서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퀸시 존스 = 1933년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십대에 트럼펫 연주자로 레이 찰스와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 보스턴의 실링거하우스(지금의 버클리음대)에서 수학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1950년대부터 클리포드 브라운, 듀크 엘링턴 등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앨범을 작업하며 명성을 쌓았고 1962년에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A&R 레코드사의 부사장직에 올랐다.
이후 그는 점차 재즈에서 팝 쪽으로 전향해 1980년 자신의 독자적인 레이블인 퀘스트 레코드(Qwest Records)를 설립, 프로듀서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음악, TV 프로그램 제작 등 다방면의 활동을 펴고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1982)와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한 자선 음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1985)를 꼽을 수 있으며 그래미상에 79차례나 후보로 지명돼 27개의 상을 받았다.
mina@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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