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나당연합군 전쟁 그린 ‘평양성’ 연출
"처음부터 3부작으로 계획을 했죠. 3부작을 해야만 삼국통일의 결정적인 사건을 다 다룰 수 있어요. 이 영화가 망하지 않는 한 3편까지 해야죠."
이준익 감독이 데뷔작인 ‘황산벌’ 이후 8년 만에 고구려와 나당 연합군의 전쟁을 그린 속편 ‘평양성’(27일 개봉)을 내놨다.
이 감독은 그간 역사물을 주로 만들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왕의 남자’를 비롯해 지난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사극만 4편을 찍었고 현대사를 그린 ‘님은 먼 곳에’도 있다.
그는 역사물을 많이 만드는 데 대해 "학교 다닐 때는 외우기 싫어서 역사가 아주 지겨웠지만, 영화를 하다 보니 역사를 알게 됐다"면서 "이 땅의 역사는 수많은 공간과 시간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성’은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 병사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거시기’(이문식)가 신라군으로 나당연합군과 고구려의 전쟁에 나가면서 시작된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풍자로 신라와 당나라가 저마다 품은 속셈과 고구려 내부의 분열 등을 그리면서 힘없는 백성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코미디를 홍보의 전면에 내세운 영화지만 전편인 ‘황산벌’과 비교하면 시원스레 웃음이 터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이준익 감독은 웃음의 방식이 진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황산벌’의 웃음 코드를 많이 부각해서 기억하는 면이 있어요. 만약 ‘황산벌’을 다시 보면 웃음의 분량은 사실 얼마 안 돼요. 중후반부의 참혹함이 더 많은데 욕 싸움이라든가 거시기 암호 같은 걸 많이 기억하죠. 저는 ‘평양성’의 웃음이 훨씬 더 다듬어진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황산벌’은 만듦새도 거칠고 감독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밀어붙인 영화죠."
그는 이어 "웃음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목적이지 웃음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고 했다. 여러 나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평양성 전투를 유쾌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게 이 영화의 목표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감독은 ‘황산벌’에서 그랬듯이 전쟁과 웃음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조합했다. 그는 전쟁과 웃음이 충돌하도록 만들다보니 이야기 구조상 웃음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성’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김유신도 연개소문의 두 아들도 아닌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병사 ‘거시기’다. 이 감독은 거시기의 입을 빌려 전쟁의 속성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민초를 대변하는 거시기라는 일개 병사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주장해요. 거시기가 아무 생각 없는 단세포로 이름 없이 죽어가는 것으로 그리면 이 영화 찍을 이유가 없죠. 이 영화를 만든 건 거시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결말이 통쾌하다는 말에 그는 "실제 역사도 다르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모든 역사 기록은 승리자의 전리품"이라면서 "지배자의 시선으로 보는 역사와 피지배자의 시선으로 보는 역사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구려군의 포로가 된 거시기가 신라군을 회유하는 방송을 하는 대목이나 이광수가 연기한 ‘문디’가 김유신을 상대로 협상하는 장면을 예로 들면서 "신분과 계급이 폭력을 만든다는 명제를 웃음의 코드로 전환했다. 웃기기 위한 웃음은 웃고 나면 날아간다. 풍자로 웃음을 높여가는 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 풍자에 대한 그의 지론은 분명했다. "웃음은 현실을 풍자할 때만 가치가 오래갑니다. 대표적인 게 채플린의 웃음이죠. 아직 70~80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희극은 식지 않아요. ‘모던 타임즈’ 같이 내가 처한 세상의 아이러니를 풍자하는 것이 진정한 웃음이에요."
이번 영화에는 ‘황산벌’과 달리 사투리를 활용한 유머가 많지 않다. 그는 "고구려 사투리는 평안도와 함경도가 섞인 걸로 했는데 일반 관객이 북한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쓸 수 없었다"면서 "그대로 쓰면 대사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단어는 순화했다"고 말했다.
벌떼로 공격하거나 포차로 동물을 날려보내는 등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전투 장면이 흥미롭다. 이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시도인데 황당하지만, 드라마와 이질적이지 않게 만들려고 인물의 디테일한 심리를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세트에만 17억원을 들이고 보조출연자만 연인원 5천명에 이르는 이 영화에는 순제작비로 57억5천만원이 투입됐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황산벌’에 이어 ‘평양성’에서도 김유신 역으로 나오는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과 무려 5편을 함께 했다. 그는 자신과 정진영의 관계를 ‘라디오 스타’ 속의 왕년의 스타 최곤과 매니저 박민수의 관계에 비유했다.
"최곤한테 박민수가 없다면 최곤이 행복할까요? 내게 정진영이란 존재는 행복입니다. 살아가면서 그 길을 같이 가는 오랜 친구가 있다면 성공 아닌가요."
그는 정진영과 자신은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지적 관계"라면서 "나는 좀 얕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정진영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 같이 일하면 내 결함을 채워준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최근 영화 3편이 연달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실패한 탓에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양성’에 대해 "내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만족한다"고 말했다. ‘평양성’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영화를 집대성했으며 현실 풍자와 해학의 정점에 달한 영화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미도’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충무로의 대표 흥행 감독이자 오랜 친구인 ‘글러브’의 강우석 감독과 맞붙는데 대해서는 "20여년을 같이 한 친구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차기작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했다. ‘평양성’의 뒤를 잇는 삼국통일 시리즈 3번째 영화에서는 나당전쟁을 다룰 거라면서 제목은 1, 2편처럼 결정적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서 딴 ‘매소성’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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