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낸 싱글 모아 정규 음반 ‘행보’ 발표
홍대 인근 카페에 윤종신(41)이 등장하자 20대 여성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슈퍼스타K 2’ 윤종신"이라며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1990년 015B의 객원 가수로 ‘텅빈 거리에서’를 부르며 데뷔한 지 올해로 20년. 그러나 윤종신은 한물간 ‘올드 보이’의 이미지보다 ‘젊은 오빠’의 기운이 강하다.
대신 30-40대에게는 싱어송라이터로 각인됐다면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예능인으로서의 존재감이 더 부각됐다. 그가 ‘라디오 스타’ ‘비틀즈 코드’ ‘밤샘 버라이어티 야행성’ 등 각종 프로그램의 MC, "제 점수는요"란 유행어를 낳은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2’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노출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월간 윤종신’이라는 타이틀로 흥미로운 음악 실험을 했다.
한장의 음반에서 타이틀곡 외의 수록곡들이 사장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난 4월부터 매월 싱글을 발표했고 최근 이를 모아 정규 음반 ‘행보(行步)’로 발표했다. 타이틀곡 ‘이별의 온도’와 ‘12月’ ‘워킹 맨(Walking Man)’ 등 신곡 3곡을 추가했다.
그중 지난 5월 발표한 ‘본능적으로’는 ‘슈퍼스타K 2’ 참가자였던 강승윤이 방송에서 불러 뒤늦게 히트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그램 종영 후 내 음반이 나오니 계획적이라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올해 초부터 예정한 음반이니 지금 상황은 내 복"이라고 웃었다.
--매월 싱글을 발표한다는 약속을 지켰는데 이 실험이 성공적인건가.
▲2-3년 더 해봐야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첫해에 예상보다 많은 수확을 얻었다. 그냥 흘러갔던 ‘본능적으로’가 강승윤 덕에 주목받았고 ‘바래바래’와 ‘치과에서’도 인기에 탄력을 받았다. 이번에는 ‘슈퍼스타K 2’란 변수가 있었기에 순수하게 평가하려면 내년 행보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지난 3월 인터뷰 때 월별 신곡 발표가 일종의 연재같은 작가주의 행보라고 했는데.
▲음악인에게 작가주의란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노래에 담아 매월 단막극을 만든 셈이다. ‘2010년 음악 일기’이니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발라드, 스윙, 포크, 록 등 음악 장르가 다양하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이 없다는 단점도 있는데.
▲이 음반의 유기성은 논하지 말아달라. 이런 견해는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대신 올해는 이런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거친 만큼 내년에는 1-6월 발표한 곡을 모아 기획된 이야기 구조의 미니음반을 선보일 수도 있다.
--수록곡 중 ‘치과에서’ ‘막걸리나’ ‘넌 완성이었어’ 등의 곡들은 어쿠스틱한 기타 리플 덕에 포크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던데.
▲지난해부터 통기타 음악에 빠졌다. 음반 속지에 담긴 ‘마틴 D-15’ 기타로 모든 곡을 썼다. 그간 건반으로 곡을 쓰는 정지찬 등과 작업했다면 이번에는 기타리스트 조정치를 파트너로 얻었다. 인디밴드의 주 활동지인 홍대 색깔이 많이 들어갔다. 조심스러운 예상을 하면 곧 홍대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윤종신 음악의 특징은 서정적인 멜로디에 내러티브가 강한 노랫말이다. 그러나 윤종신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팥빙수’처럼 가벼운 곡들도 놀랍다. 윤종신의 음악 색깔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었을 때 느낌이 내 색깔 아닐까. 난 매번 대중이 다르게 느끼길 원한다. 어떤 사람이 ‘이곡이 윤종신 거였어?’라고 말하는 게 좋다. 요즘 트위터에서 ‘리버럴(Liberal:자유로운)’이란 단어를 배웠다. 내가 ‘리버럴’한 사람이니까 내 음악도 ‘리버럴’했으면 좋겠다.
--정규 음반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서 이번 실험이 준 깨달음은.
▲음반 시장이 침체라고 방에 갇히는 폐쇄적인 음악인보다 몸을 던지면 얻는 게 많다는 것이다. 추락하면 끌어올리는 맛도 있으니 부딪혀서 생긴 결과에 두려워해선 안된다. 반윤리적인 것만 아니라면 자신의 생각을 시도해야 한다. 음반 판매량과 팬들의 반응은 주가와 같아서 잡주(雜株)가 아니라면 바닥을 친 후 올라가는 시점이 있다.
--강승윤의 ‘본능적으로’가 히트하며 노래가 새 생명을 얻는 현상은 어떻게 바라봤나.
▲승윤이에게 ‘본능적으로’가 딱이라는 생각에 선곡했는데 적중했다. 하지만 이 정도 파급효과는 생각 못했다. 노래도 단순히 듣는 것 외에 동기와 계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오디오적으로는 나와 승윤이의 버전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노래가 들려졌을 때의 상황이 중요하다. 물론 승윤이의 비주얼도 한몫 했다. 하하.
--윤종신이 자신의 최근 곡을 띄우려는 의도였다는 악성 댓글도 있던데.
▲잘 됐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다. 안 됐을 때의 위험 부담은 아무도 생각 안 하는거다.
--’슈퍼스타K 2’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는 뭔가.
▲내가 키우는 맛이다. 시청자가 표를 행사하고 스타 탄생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또 나와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 스타가 되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보통 기획사의 신인들은 완성된 상태로 등장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선 가수가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는 원동력은 뭔가.
▲나에게 음악은 놀이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
--후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곡을 준다. 심지어 ‘후배 가수들에게 준 곡이 퇴짜맞았다’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희화화도 하던데 자존심을 챙기지 않는 것인가.
▲자존심은 그럴 때 세우는 게 아니다. 작곡가는 퇴짜의 연속이다. 그런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작업 중인 두 후배 가수의 곡을 끝으로 좀 자제하려 한다. 기획사가 곡을 검토하는 과정이 노동 같다.
나는 발상을 전환해 모험도 시도하는데 기획사에선 가수의 고정된 이미지에 맞는 곡만 고르려 한다. 가수는 다양한 옷을 입어봐야 한다. 이번 음반 수록곡 ‘후회王’은 보아, 김종국, 린 등 6명의 가수에게 퇴짜맞았다. 하하. 나도 후배 양성을 위한 회사를 설립할 생각인데 내가 제작하는 가수들에겐 다양한 시도를 해볼 것이다.
--음악인과 예능인의 균형을 영리하게 조화시키켰다는 평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예능 활동이 내 음악의 이미지에 영향을 줬다. 확실한 건 난 양쪽 다 ‘올인’했다는 점이다. 예능 분야는 뒤늦게 시작해 정말 열심히 했다.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니니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 필요도 없다.
--조용필, 이문세, 신승훈 등은 TV를 떠나 주로 공연 무대에서 활동한다. 가수에게 TV란 약인가, 독인가.
▲선배님들이 공연을 택한 건 인생의 룰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하려면 여러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인기와 히트곡이 있어야 하고 관객들이 와야 한다. 나도 공연 무대가 좋지만 그렇다고 TV가 싫은 건 아니다. 이게 나의 룰이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뭘 하지 말라’보다 ‘뭐든지 해보라’고 권할 것이다. 후배들 스스로 자신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슈퍼스타K 2’에서 권리를 줬기에 조언했지만 실제는 ‘부딪혀가라’는 주의다.
--윤종신의 20년 가수 인생은 어땠나.
▲난 운좋게 잘 흘러왔다. 과거 3집 제목이 ‘더 내추럴(The Natural)’인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살아가자는 주의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속 얘기를 많이 한다. 대중과 장벽을 걷고 어느 정도는 알몸으로 있는 게 좋다. 나에게 질릴 단계도 반드시 올 것이니 겁내지도 않는다.
나도 2000년대 초반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견디니 좋은 때가 왔다. 가수와 대중은 성격이 잘 맞다가도 안 맞는 친구 사이 같다. 난 후배들에게 ‘힘들어도 자살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오래 버티라’고 말하고 싶다. 추락과 죽음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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