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 뉴욕 수질 좋은 데 착안
고객들 “다른 병물 보다 싸다” 환영
수돗물을 돈 받고 판다면 사는 사람이 있을까?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 같은 청년이 뉴욕에 등장했다. 뉴욕 시 수돗물의 수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에 착안한 젊은 사업가가 물을 병에 담아 파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물을 굳이 돈 주고 살까 싶은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병물 문화가 너무 깊숙이 뿌리박힌 덕분이다.
점심시간을 맞은 두 교사가 맨해탄의 한 커피샵에서 냉장 보관된 병물을 고르던 중이었다. 페리에, 스마트워터, 뉴욕 시 수돗물.
“수돗물?”
앨리슨 젤리(26)는 투명한 플래스틱 병을 꺼내 들었다. 병에는 오렌지색으로 ‘탭드 NY. 정수된 뉴욕시 수돗물’이라고 쓰여 있다. 병에는 “이 물을 만드느라 해를 입은 빙하는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말도 적혀있다.
젤리는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스마트워터는 1달러85센트. 탭드 NY은 그 보다 35센트가 쌌다.
젤리와 동료 교사는 수돗물 병물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값이 더 싸잖아요. 물은 다 그게 그거예요. 나는 단지 병물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그 몇 피트 옆에서 부스스한 머리에 청바지와 줄무늬 셔츠를 입은 청년이 그들을 지켜보며 씽긋 웃었다. 탭드 NY을 창업한 29세의 크레이그 저커가 병물 배달을 하던 중이었다.
그가 병물 사업을 시작한 것은 5개월 전이었다. 뉴욕 시민들이 수돗물을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 돈 주고도 기꺼이 사 마실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고 물을 길어 올릴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물은 대단히 맑고 깨끗해요”
뉴욕시 수돗물은 미국에서 가장 건강에 좋은 물 중의 하나로 정평이 나있다. 너무 신선해서 따로 정수할 필요가 없다고 연방 환경보호청은 지난 2007년 밝혔다. 뉴욕의 피자나 베이글 제조업자들은 뉴욕의 물이 제조 비법이라고 말해왔다. 물을 마시면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이 보통 다른 수돗물처럼 염소 등 광물질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뉴욕의 수돗물은 멀리는 125마일이나 떨어진 업스테이트 뉴욕의 3개 호수와 19개 저수지를 거쳐서 온다. 대부분의 물은 생태계 시스템의 천연 정화과정을 통해 걸러지고 보호된다. 물이 지하로 혹은 지상으로 흐르는 동안 천연 광물질들이 저절로 용해되도록 되어 있다.
저커의 아이디어란 이런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물을 시민들은 집에서만 마실 뿐 밖에 나오면 어디서 마실 것인가. 뉴욕시 거리거리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에 대한 해법으로 저커는 병물을 착안했다.
저커는 타고난 사업가이다. 클리블랜드에서 살던 8세 때 이미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시작했다. 이후 그는 항상 20개 정도의 사업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다고 한다.
16세 때 저커는 홀인원 사업을 했다. 1달러를 내고 골프공을 쳐서 150야드 떨어진 곳에 홀인원 하면 100만달러의 상금을 준다는 사업이었다. 사업을 위해 그는 드라이빙 레인지의 한쪽을 빌리고 보험사를 설득해 보험금을 내고 100만달러 상금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했다.
아무도 홀인원에 성공하지 못했고, 저커는 돈을 좀 벌었다.
오하이오의 마이애미 대학에 재학 중에는 할인카드 사업을 했다. 카드를 소지한 학생들에게 지역 업소들이 할인을 해주는 사업이었다. 그는 할인카드 멤버로 가입한 업주들로부터 돈을 받고 대학 서점에 카드를 팔아서 수입을 챙겼다. 학교 서점들은 그로부터 할인카드를 사서 고객들에게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그 사업을 그는 22세 때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판 후 뉴욕으로 이사를 했다. 뉴욕에서 그가 시작한 사업은 장난감과 선물용품 도매상.
이어 2006년 그는 꿀을 파는 햄튼 벌꿀 사를 사들였다. 지역 농업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면서 사업을 확장, 그의 회사 꿀은 뉴욕 지역 홀푸즈 체인의 최다 판매 상표가 되었다.
그리고는 2007년 어느날 밤 저커는 친구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찬 수돗물을 마시면서 뉴욕의 물은 왜 그렇게 좋은 지로 화제가 이어졌다. 뉴욕에서 많은 식당들이 손님들에게 수돗물을 내놓기 시작한다는 사실도 그의 눈길을 끌었다. 뉴욕 수돗물을 병에 담아 팔아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햄튼 벌꿀 회사를 팔고 친구와 가족들의 투자를 모아 2008년 10월 탭드 NY을 창업했다. 그리고는 크레익스리스트를 통해 존 플랙스(26)를 사업 파트너로 맞고 브루클린의 창고를 빌려 그곳의 물을 수원으로 삼았다. 수도료는 748갤런당 2달러 정도. 물탱크 달린 트럭을 리스하고 운전기사를 고용한 그들은 5,300갤런의 물을 탱크에 채운 후 12마일 떨어진 뉴저지로 옮겨와 물을 병에 담는 작업을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천연자원 방어 위원회 등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상점에서 파는 대부분의 병물은 기본적으로 지하수나 호수, 샘에서 뽑아낸 수돗물이다.
다른 병물 회사들처럼 탭드 NY도 여과 과정을 거친다. 송수관의 염소나 다른 성분들이 남겼을지 모를 이상한 색깔이나 맛들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종종 병물은 미대륙의 저편이나 지구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느라 개솔린을 펑펑 쓰는 트럭이나 비행기에 실려 운반된다. 그에 비하면 뉴욕 수돗물은 온실개스 배출시킬 일 없이 거의 전적으로 중력에 의존해 물을 운반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저크는 강조한다.
“물이 꼭 피지에서부터, 프랑스에서부터, 아니면 최소한 서부지역에서부터 와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자신이 파는 수돗물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물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운반할 필요가 없어 대기오염 개스를 방출하지 않는 것이 환경 보호의 전부는 아니라는 비판들이 있다. 물을 담은 플래스틱 병이 문제인 것이다. 음료수 병 중 80%는 물을 담았던 병들인데 이 모두가 매립지를 메우거나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니 병물 대신 주민들이 정수 필터를 설치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뉴욕 시 대변인은 뉴욕 수돗물이 병물로 만들어질 정도로 수질을 높이 평가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의문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냥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을 왜 굳이 돈을 주고 사느냐는 것이다.
저커와 동업자는 이제까지 5만개 병물을 팔았고 75개 업소들이 고객이 되었다. 이들이 매일 하는 일은 주문 받은 물을 배달하고 카페나 델리, 호텔 등을 찾아다니며 자사 제품을 선전하는 것. 저커는 사업을 확장해 오는 여름까지는 수퍼마켓에 납품하고 연말이면 다른 브랜드들을 뛰어 넘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날을 위해 그는 판촉 스티커들을 만들며 고객유치에 전념하고 있다. 판촉 스티커들에는“저 멀리 어느 산꼭대기에서 오지 않았음”“병물에 반대하는 병물” 등의 글귀가 쓰여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