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뇌 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환자’
5년 동안 그는 세상에 H.M., 혹은 헨리 M.으로만 알려져 왔다.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그는 그러나 수술을 받은 1953년 이전의 사항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지난 12월2일 코네티컷주 윈저 락스의 한 요양원에서 호흡기 장애로 숨진 후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던 그의 신원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이름은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 나이는 82세였다. 20대에 받은 뇌수술은 그 개인에게는 재난이었지만 과학계에는 대단한 기회였다. 기억이 인간의 뇌 속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생성되는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유리창을 제공한 셈이었다.
27세 때 뇌수술로 기억력 잃은 후 평생 리서치 대상
‘뇌 속에 2개의 기억체계 존재’ 사실 입증의 산 증거
이름, 얼굴은 매번 잊어버려도 수술 전 옛일은 기억
수십년에 걸쳐 1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그의 기억 과정을 연구하며 수십개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비극적으로 살아있는 실험대상이 된 환자의 가장 드라마틱한 모델이었지요. 그 한사람의 케이스가 지능 체계 전체를 알게 해주었읍니다”라고 콜럼비아대학의 노벨상 수상 생리학자 에릭 캔들교수는 말했다.
9세때 헨리는 코네티컷 하트포드 카운티의 시골마을 집 근처에서 자전거에 치여 길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었다. 이후 그는 간질성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의사들은 발작이 사고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가족의 유전적 간질병력 때문이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발작은 점점 심해져 27세 무렵엔 많게는 하루 열 번씩도 발작을 일으키고 1주일에 한번은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의 심한 발작을 일으켜 자동차 정비사였던 그는 출근도 할 수 없었다.
1953년 하트포드병원의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 윌리엄 스코빌 박사가 그의 수술을 맡기로 결정했다. 스코빌박사는 뇌 절제 수술에 필요한 섬세한 테크닉의 권위자였다.
그해 9월1일 헨리는 수술대에 누웠다. 스코빌 박사는 그의 뇌 깊숙이 금속 튜브를 삽입하여 뇌의 해마상 융기에서 두 개의 손가락 크기의 조직을 제거해 냈다. 당시는 그것이 기억 생성과 저장에 관련된 조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수술은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헨리의 심한 발작은 1년에 2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예견 못했던 불행한 후유증이 뒤따랐다. 몇초, 몇분이 지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심한 기억상실 증세가 생긴 것이다. 수술 며칠 전 일도 모두 잊어 버렸다. 그러나 오래 전 일은 기억했다. 밥을 먹을 때 마다, 친구를 만날 때 마다, 숲을 산책할 때 마다 그는 그것이 매번 처음인 것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헨리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수술결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민하던 스코빌 박사는 기억력문제를 연구해온 캐나다 몬트리얼 맥길대학의 와일더 펜필드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펜필드와 함께 일하던 브렌다 밀너 박사가 헨리에 대한 연구를 맡기로 했다. 밀너 박사는 몬트리얼에서 밤기차를 타고 와 헨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신경 및 기억력 테스트를 거듭했다. MIT의 신경생물학자 수잔 콜킨도 헨리에 관한 연구를 시작, 이 두 과학자의 연구 협력관계는 이번 헨리의 사망 직전까지 지속되어 왔다.
과학자들은 매번 헨리를 방문할 때 마다 자신을 소개해야 했으나 점차 헨리는 콜킨 박사에 대한 일부 기억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날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로 생각했어요”라고 콜킨 박사는 말한다.
과학자들이 맨 처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지능과 기억력 생성은 서로 다르게 기능한다는 사실이었다. 헨리의 새로운 기억 능력은 거의 없어졌으나 그의 지능은 정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논리적이고 포괄적인 대화도 할 수 있었고 낱말 맞추기 퍼즐도 곧잘 풀어나갔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억 생성은 뇌의 일부 신경조직이나 부분이 아닌 뇌 전반에 걸쳐 이뤄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밀너 박사가 헨리의 연구를 통해 그의 뇌 일부가 전혀 손상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를 발표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밀너 박사의 연구는 뇌에는 기억력 생성에 있어 적어도 2개의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는 이름과 얼굴, 새로운 경험등을 기억했다가 이를 의식적으로 되살리는 이른바 ‘서술적 기억’으로 이는 해마상 융기조직에 의존하고 있는데 헨리의 경우 이 조직이 27세 때의 뇌수술로 손상되었다.
다른 하나는 뇌의 다른 시스템에 의존하는 잠재의식이다. 몇 년간 타지 않았던 자전거를 다시 탈 수 있게 해주는 기억력이다.
밀너 박사는 이 차이를 증명하기위해 헨리에게 거울에 비친 다소 복잡한 모양의 물체를 그리도록 했는데 쉽지않은 작업이었으나 헨리는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리라고 하자 헨리는 기억을 해내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들박사는 “브렌다 밀너의 헨리 M. 연구는 현대 신경과학사의 가장 획기적인 이정표의 하나다. 뇌에 두 개의 기억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서 인간의 기억력과 정신 장애에 관한 모든 연구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헨리의 초창기 시절 기억은 많지 않다. 아버지는 루이지애나에서 하트포드로 이주한 전기기술자였으며 헨리는 부모가 사망한 후엔 한 친척과 살다가 1980년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와 숲속에서 사격, 하이킹을 하던 소년기에서 대공황과 2차 대전 당시의 생활은 기억했다. 그러나 수술 후 부모와 살면서 잔디 깎기, 쇼핑, 낙엽 쓸기 등 일상사를 도왔던 그는 부모가 사망한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헨리는 상냥하고 자신을 연구하러 오는 과학자들에게 기꺼이 협조했는데 이런 태도가 그의 천성이었는지, 가정교육 때문이었는지, 사고의 후유증이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1926년 2월26일에 태어나 2008년 12월2일 사망한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이 과학발전에 남긴 유산은 콜킨 박사가 집필중인 저서 ‘기억하지 못하는 일생(A Lifetime Without Memory)’에 담겨 머지않아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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