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에서 언제 손을 뗄 지,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파병된 미군 사상자 수는 자고새면 늘고, 추가 파병 역시 추진 중이어서 이제 ‘이라크’라면 미 국민들은 지긋지긋해진 상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기화한 이라크 전 때문에 짭짤한 재미를 보는 책이 있다. 2차 대전 때 만들어진 책인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이라크 파병군인용 지침서
시카고 대학이 출판하면서 너도나도 구매열기
그때나 지금이나 복잡한 이라크 상황에 대중적 호기심
<대민봉사활동에 나선 이라크주둔 미군들. 미군들과 이라크인들의 억울한 희생은 멈추지 않고 있다.
>
이 책이 아무리 인기를 얻는다 해도 절대로 해리 포터만큼 팔릴 수는 없다. 단지 학구적이고 고고한 대학 출판계에서는 기현상이라고 보일만한 열기가 이 책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1891년 이후 학문서적 출판사로 명성이 높은 시카고 대학 프레스는 이 책 5,000권을 급히 요구하는 주문을 받고 방금 인쇄를 마쳤다. 책의 이름은 ‘2차 대전 중 이라크 파병 미군을 위한 지침서’.
시카고 대학 출판사에 의하면 이번으로 세 번째 주문인데, 인쇄하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다. 출판사 홍보 담당 매니저의 설명으로는 이라크 전에 관한 학자들의 학술회의가 끊이지 않는 데다 일반 대중의 관심까지 합쳐지면서 책이 날개를 달고 있다.
포켓 사이즈로 만들어 졌던 원래 지침서는 미군 당국이 2차 대전 중 영국군 지원을 위해 군인들을 이라크로 파병하면서 나눠주었던 것이었다. 당시 영국군은 독일군의 페르샤만 진출 저지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출판된 ‘지침서’는 10달러의 가격으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고, 일부 서점들도 계산대 바로 옆에 비치해 고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출판사 홍보 담당 매니저의 분석이다.
“책이 대중들과 코드가 맞은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놀라울 뿐입니다. 내용으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충동구매용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는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책 내용 중에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표현들이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이나 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속어 같은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조언들은 지금 이라크로 파병되는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내용들이다.
<이라크 인들과 이야기 할 때 잘난 척 하거나 거만하게 굴지 말라. 이라크 여성에게 절대로 눈길을 주거나 말을 걸려고 하지 말라. 그 나라는 여름이면 타는 듯이 뜨겁고 먼지가 많다는 사실에 대비하라. 아랍어 몇 구절을 배워두라. 아랍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게릴라 전사들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하라.>
책 서두에는 “미국이 승리하고 실패하고는 상당부분 이라크 인들이 미군들을 좋아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44페이지의 이 책은 2차 대전 때 병사들에게 지급된 것과 꼭 같은데 단 하나 서문이 추가 된 것이 다르다. 서문은 2003년 4월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후 1년간 이라크에서 복무한 존 나글 육군 중령이 썼다.
이 해묵은 책을 새로 출간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영국 보들리안 도서의 성공을 본 결과이다. 보들리안 도서는 2차 대전 당시 미군당국이 영국으로 파병되는 군인들을 위해 만든 지침서와 호주로 파병되는 군인들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해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으로 가는 군인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언은 “왕이나 여왕을 절대로 비판하지 말라”.
시카고 대학 출판사는 보들리언 서적의 미국내 마케팅과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만들어진 이라크 파병 미군들을 위한 지침서.>
이들 지침서 중 영국이나 호주 파병군인용 책들은 시대적으로 너무 동떨어진 감이 있지만 이라크 파병 병사용 지침서는 지금의 이라크 전쟁에 섬뜩한 뭔가를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들 유목민은 족장들을 우두머리로 하는 여러 종족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 족장이 가진 힘은 대단히 강하니 그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책은 적고 있다.
나글 중령도 이 부분에 동의를 한다. 그는 서문에서 후세인 축출 후 족장들을 더 신경 써서 챙겼다면 지금 같은 격렬한 폭동을 애초에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책은 이라크 사회의 분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종교로 보나 종족으로 보나 이런 저런 분파로 갈라져있다는 지적인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60여년 지난 지금 미국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셈이다.
미군도 이라크인도 억울한 희생들
지난 2003년 3월19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이라크에서는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전쟁 반대 웹사이트인 antiwar.com 집계에 의하면 파병 미군 중 전체 사망자는 3,829명, 이들 가운데 3,146명은 전투 중 사망했다.
이라크 주둔 중 부상당한 미군은 공식 집계로 2만8,171명. 그러나 반전 단체들은 부상자가 적게는 2만3,000명, 많게 잡으면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상자 통계는 10월14일 기준이다.
그런데 파병군인들이 겪는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다. 심리적 고통이 엄청나서 이들 부상 군인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주로 이라크 전쟁에서 부상당한 미군은 독일의 란트슈튤 지방 병원으로 호송되는 데 이곳에 입원했던 병사 10명 중 한명이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럽 내 최대 미군병원인 이 병원에 보내진 부상 미군은 1만2,000명 정도. 이들 중 8-10%가 정신과적 문제나 행동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병원 측은 밝혔다.
다시 말해 파병 군인들 중 1,000명 정도가 정신질환으로 후방으로 호송되었다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치료 받은 테러와의 전쟁 군인은 총 1만1,754명. 이들 중 9,651명은 이라크에서 나머지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던 미군들이다.
한편 미국의 침공으로 인해 사망한 이라크 인은 총 108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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