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배우는 삶의 지혜
최정화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웃는 소/Laughing 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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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한 번 꼭 아침 골프 연습을 나갑니다.
뿌연 여명 속에 시작해 저 만치 언덕 너머 해가 떠 올라
날아 가는 볼들이 햇살과 섞여 눈이 부실 때까지 천천히
심호흡하며 하늘과 땅으로 그렇게 볼들을 날려 보냅니다. 어느덧
하얀 아침이 잔뜩 밝으면 언덕 너머로 한 움큼 소 떼가 나타나
금새 내 등 뒤 초원을 수 십 마리 소 얼룩으로 메웁니다.
엄마 소와 정답게 내려 오는 송아지 두어 마리, 억센 다리로
혼자 당당하게 걷는 검은 황소, 멀끔한 두 눈으로 내 골프
동작을 관찰하는 누렁이, 그저 움메 움메 ‘옴[OM] 챈팅’으로
염불삼매에 빠진 흰둥이. 각양각색 여러 소들이 저마다
일정 공간을 누리며 자리를 수 놓습니다. 마침, 내가 자리 잡은
티 박스 바로 뒤에 놓인 물통엔 저마다 고개를 들이미는
힘센 황소들과 어렵게 몸싸움을 하는 여린 소들도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이 놈 저 놈과 눈을 섞으며 ‘옴[OM] 챈팅’과
’움메 챈팅’ 합창을 벌려 봅니다. 유독 한 두 녀석 꼭 자리를
지키며 질세라 ‘움매애’ 소리를 높게 울려 댑니다. 얼마 지나
다시 볼 치러 돌아오다 뒤 돌아 보면 그 한 녀석 여전히
내 쪽으로 눈을 끔벅대며 돌아오라 움메 움메 합니다.
모른 척 한 참 볼을 치다 보면 등에 땀이 촉촉히 배어 옵니다.
벤치에 잠시 앉아 시가 한 대 물고 뻐끔 뻐끔 연기를 피워
올립니다. 주위에 흩어지는 구수한 냄새와 땅 위를 구르는
가을 낙엽이 왠지 잘 어울린다 느껴 집니다. 일어나 소들
풀 뜯는 뒷동산을 쳐다 봅니다. 나이 든 소 두어 마리가
서로 마주 앉아 어기적어기적 되새김질로 한적한 아침을
보내고 있습니다.
홀연, 되새김질 하는 소 한 마리의 웃는 모습이 보입니다.
내 쪽을 빤히 쳐다 보며 진짜 보란 듯 묘한 웃음을 흘립니다.
옆으로 삐딱하게 어금니를 비벼대는 그 소의 얼굴이
영락없는 미소의 표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가 연기는
잠시 잊고 나도 내 쪽으로 쉴 새 없이 웃음을 보내는 소를 향해
덩달아 연신 미소를 보냅니다.
한참 그러다 보니 불현듯 남쪽 마을 ‘웃는 소’ 시인 생각이 간절해지며
그 분이 지은 시 ‘웃는 소’가 떠 오릅니다. 풀 한 움큼 / 물 한 사발 /
하늘에 대고 / 한 번 크게 웃어 제치고 / 티 없는 그 큰 눈망울 /
산을 담아 / 바위처럼 앉아 / 웃음 새김질 하는
마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소의 웃음을 미리 본 듯 그려낸
시인의 정서에 찬탄하며 즉석에서 영어로 옮겨 봅니다.
A handful of grass / A bowlful of water / Unto the sky /
A venting laughter / That innocuous eyeballs / Resembling
mountains / Sitting like a rock / Regurgitating the laughter
’리거어지테이트’란 영어 단어가 이토록 짜릿한 느낌으로
다가 오다니! 웃음을 되새김질 한다는 시인의 표현이 이토록
극명하게 의표를 찌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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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앉아
웃음 새김질 하는
Sitting like a rock
Regurgitating the lau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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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한 눈 팔고 노트에 끄적거리는 동안 아까 되새김질 하던 소들은
이미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들이 떠난 그
자리엔 아직도 되새김하던 소 웃음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음을
느낍니다. ‘옴[OM] 챈팅’과 ‘움~머’ 합창 소리도 여전히 같은 하늘과
땅에 진하게 번져 있습니다. 반쯤 타 들어간 시가를 비벼 끄며 다시
티 박스에 들어 남은 볼들을 쳐 냅니다. 어느덧 정오가 다 되어
갑니다.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골프 가방을 둘러 메고 연습장을 떠납니다.
참, 웃는 소 시인은 골프도 잘 합니다. 이 번 주말엔 한 번 같이
골프소풍을 가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웃는 소의 얼굴로 거침없는
무애[無涯]의 삶을 사는 시인/화가/골프도인 ‘East Field’, 아마도 지금쯤
아침 식사 마치고 바위처럼 앉아 웃음 새김질 하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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