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이 4·19 학생혁명 47주년이었음을 알았던 한인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거의 반세기 전 일인데다 언제부턴지 달력에 기념일로 표시되지도 않아 할아버지·할머니가 돼버린 4·19세대들이 매년 모르고 지나기 일쑤다.
내일(4월29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한인들은 아마 더 드물 듯하다. 미주 한인이민 100년 사상 가장 큰 재앙인 4·29폭동이 터진 날이다. LA를 쑥대밭으로 만든 미증유의 이 흑인폭동은 엉뚱하게도 한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4·29는 흑인 부랑자 로드니 킹이 경찰에 쫓기다 붙잡혀 몰매를 맞은 것이 단초였다. 쓰러진 킹을 백인경관들이 발로 차고 곤봉으로 난타하는 장면이 한 시민의 몰카에 잡혀 TV뉴스에 반복 방영됐다. 폭행경관들이 재판에서 뜻밖에 무죄평결을 받자 흑인들이 격분, 자기네 동네이며 악명 높은 우범지역인 사우스센트럴서부터 방화하기 시작했다. 그 일대에 밀집한 한인 그로서리업소들이 당연히 맨 먼저 불에 타고 폭도에 유린당했다.
밤새도록 북진하며 닥치는 대로 방화약탈을 자행한 폭도는 이튿날 한인타운에 다다랐다. 당시 필자가 일했던 본보 미주본사 옆 상가에서도 폭도들이 창문을 박살내고 유유자적 물건을 훔쳐갔다. 4·29는 LA 한인사회에 사망자 한명과 50여명의 부상자 외에 2,300여 업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총 3억5천만 달러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4·29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4·19세대였다. 이민 온 뒤 목숨 걸고 흑인지역에 들어가 10여년간 밤낮없이 일하며 겨우 기반을 잡은 중·장년층이었다.‘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다’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에 시달리게 된 이들은 속속 워싱턴주등 보다 안전한 타주로 이주하거나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본국으로 역이민 길에 올랐다.
4·19와 4·29는 그렇다 치고 4·16을 모르는 한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2주전 버지니아 공대의 한인학생 조승희가 32명을 총격살해한 미증유의 캠퍼스 학살사건이다. 그동안 한인사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주류사회에 공식사과를 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 해왔다. 4·29세대는 대체로 사과하자는 쪽이고 ‘3·8·6’이후 세대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전자는 성의차원에서라도 유감표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후자는 한인사회는 4?29의 피해자일지언정 4?16의 가해자집단이 결코 아니라고 반박한다.
조승희와 동시대인이며 그가 저지른 만행의 최대 피해자일 수 있는 ‘4·16세대’의 시각은 어떤가? 본보 뉴욕지사가 지난 24일 실시한 인터넷 좌담회에서 한인학생회 간부들은 한인 청소년들의 모든 문제는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번 사건의 진정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한다며 부모세대에 자성을 촉구했다. 미국식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한인사회에서 이번 사건의 초점이 공식사과나 성금에 맞춰지는 것이 불만이다.
4·29세대는 당대로 끝나지만 4·16세대는 우리의 후세와 함께 언제나 존재한다. 이들은 부모세대 못지않은 곤경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하게 마련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우등 성적이나 명문대 입학만을 채근하기보다 자녀 자체를 사랑하는 본성부터 더욱 다져야겠다.
다른 지역에 이어 시애틀 지역 한인단체장들도 엊그제 모임을 갖고 유감표시 차원을 넘어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한 성금을 모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인사회의 청소년 문제를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대비책을 강구하는 단체장 모임도 속히 열렸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