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균(변호사)
휠체어를 끌고 밀며 등산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정말 ‘무대포 한국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리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진정 힘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등산로에 깔린 자갈에 요동치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고통을 이겨내
면서도 하얀 이를 드러낸 장애우들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것도 내가 미처 인식치 못한 부분이었다. 오죽하면 휠체어 한 대는 앞바퀴가 부러져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을까? 일부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어떤 이들은 몸을 양쪽에서 부축 받으며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누이의 손을 꼭 잡고 내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편도 약 2.5마일(4킬로미터)의 등산길 곳곳에는 얼음이 언 구간도 있어 특별히 조심해야 했고 군데군데 땅이 많이 파여 휠체어를 들고 이동하기도 했다. 결국 휠체어는 산악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길에 깔린 자갈 하나하나는 우리의 인내를 계속 테스트하고 있었다. 중간쯤 힘이 들어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니 피터란 녀석이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한참 주무르고 다닌 것처럼 보이는 베이글(Bagel) 한 조각을 내놓으며 싫다는 나에게 무조건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어 케빈이라는 녀석이 책상다리 하고 앉아있는 나의 무릎 위로 뛰어 올라 앉기도 했다. 촌각이지만 난 부정(父情)과 같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비록 생면부지의 사이이긴 하지만 이미 이 녀석들과 한 가족 같은 감정을 나누며 흙속에서 뒹굴었다.
다시 행군을 계속했다. 앞으로는 이미 앞서간 휠체어에서 ‘영차 영차’ 소리가 들리고 뒤를 둘러보니 우리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그러나 밝은 표정을 한 산우들과 장애우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우리를 따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미국인들은 우리의 행렬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일부 등산객들은 너무 감동한 나머지 많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자기들이 도울 일이 없느냐고 주문하기도 했다.
장애우 30명, 그들의 가족 20명, 그리고 산우회 가족 30여명 등 총 80여명이 함께한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다. 우린 같이 고생하고 땀 흘리고 물을 나눠 마시며 한 발짝 한 발짝 진솔한 행보를 계속했고 두 시간이 얼마 안 되어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우뚝 선 정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구슬처럼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는 기분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아주 묘한 맛이 있다.
호연지기로 표현을 해야 할지 엑스타시로 표현을 해야 할지...아무튼 그 깊은 맛을 언어로 형상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리이겠지만 난 산 아래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확신했다. 바로 이 순간 우리 장애우 형제들도 그들의 마음속 심연 속에서 뭉클거리는 무언가를 나처럼 느끼고 있을 거라고. 그저 오늘 같은 하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저절로 고개가 숙여
졌다. 우리 80여명의 얼굴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전망대 위의 카메라를 향했고 알지 못할 운명으로 결속되어진 우리 모두의 그 한순간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아쉬움을 뒤로 한 채 초겨울의 짧은 해를 피해 우린 하산 길을 재촉했다. 사지는 물론 목까지
불편한 몸으로 우리와 기꺼이 동행해준 ‘준’. 준은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가는데도 우리가 미안해 할까봐 준은 힘든 표정 한번 내지 않았다. 강국이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전쟁터의 장수처럼 우리를 호령하며 너무 빨리 간다고 짜증, 누가 어디 갔냐고 불평, 쉬었다 가라고 호통 치던 모습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느껴졌었다.
난 지금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다. 안전사고나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정상을 밟았다고 하는 사실은 물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사랑을 느껴보고 확인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봉사는 하면 할수록 중독성이 있다”고 얘기해준 최단장의 말이 이제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고생하신 사계산악회 회원들도 “이번 초겨울 나들이의 진정한 수혜자는 바로 자신들이었다”라며 마음 뿌듯해했다. 자신들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와 하는 것 같았다. ‘사계’산우들은 장애우들에게 나침반을 상징적인 선물로 주었다. 지금도 나는 하산 길 내내 내 옆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행했던 장애우 종건이가 끊임없이 나에게 중얼거린 말이 생각난다. “산이 좋다!” “공기가 좋다!” 비록 서투른 발음이었지만 종건이는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