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you walk?” 하고 의사가 물었을 때, 나는 무식하게도 “Of course! I work everyday.” 하고 대답했다. “너 걸을 수 있어?” 했는데 “당근이지, 매일 일해.” 이런 대답을 한 꼴이다. 의사도 의아했으리라. 의사 앞에 가면 주눅이 드는 나는 영어만 하는 의사 앞에선 더 기가 죽는다. walk와 work가 구별되게 들렸을 리 없다. 잠시 후 서로의 오해에 크게 웃었다. 그러나 의사의 소견을 듣는데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엑스레이를 보이면서 말하기를, 관절염으로 인해 나빠진 무릎을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맞닿은 뼈 양쪽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앞서의 질문은 “어떻게 이 상태로 걸음을 걷고 생활을 했는가?” 하는 의미로 했을 터였다. 아팠지만 관절염의 통증인 줄 알고 참았다고 했더니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금이 간 다리를 끌고 최근까지 도서관 중고 북 세일도 하고, 빠질 수 없는 세 번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문화생활도 해야 한다며 ‘발칙한 미망인’이라는 연극도 한편 보고, 박종호 성가사의 선교 음악회에도 다녀왔다. 한국에서 오신 나태주 시인과 구재기 시인을 만나 뵈었고 김호길 선생의 출판기념회에도 다녀왔다. 강의료를 받은 선배가 한턱 낸다기에 한참을 운전하여 스시 집에도 가고, 회사가 복잡하다는 글을 읽으신 선생님으로부터 위로의 냉면도 얻어먹으러 외출했었다.
물론 매일 새벽기도회에 가고, 다녀오는 길엔 크로상 한 조각에 커피 한잔도 사 먹었으며 회사에 출근해서는 열심히 일도 하고 틈틈이 은행 볼 일도 보았고 퇴근 후엔 저녁밥도 지었다. 이 말은 의사 선생님께 다 하지 못하였다. 다만 “스포츠 센터에 나가지 못한 것이 일 년이 넘었다”고만 말했다. 말을 다 안 했다 뿐이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땐 의사와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이 안(못)되는 것이 다행이다. 좋은 이들을 만나고 분주할 땐 별 통증도 모르겠더니 한가해지니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겁 많은 나는 아픈 것이 수술 받는 것보단 나을 듯하여 주변에 내색 않고 잘도 다녔다. 주치의인 동창에게도 약간의 통증이 있다고만 말하고 정 아프면 진통제를 먹으며 참았다. 그러다가 자진하여 관절 의사를 방문하였다. 약으로 다스리기엔 통증이 심했던 탓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식해도 한참 무식한 짓을 한 것인데, 그나마 더 늦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닥터는 되도록 다리를 쓰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란다. 스케줄을 조정하여 빨리 수술 받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복잡한 회사 일도 많고 나 없으면 회사에 지장이 많을 텐데 걱정이 앞서지만 어쩌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걸 알기에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을 보여주며 자세히 친절히 설명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금이 간 부분의 뼈는 갈아내고 메탈로 베이스를 깐 후 플래스틱 insert를 넣는 방법으로 수술을 한다고 한다. 마치 건축회사인 우리 회사의 작업내용 같기도 한 것이 그야말로 골조 공사이다.
의사는 특히 관절 의사는 톱으로 뼈를 자르고 사람 몸을 생선 다루듯 한다던데 내가 바로 도마 위의 생선 역을 감당하고 나왔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나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감사할 일이다. 철없는 나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서 주님이 내 몸 속에 철을 베이스로 두시기로 하였나보다.
수술 마치니 나는 이제 ‘철 든 여인’이 되었다. 조금 더 있으면 기적 같이 좋아져 발레도 할 수 있다던데 발레는 고사하고 막춤이라도 추어볼 요량이다. 나이 오십 넘어 철들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 고통의 분량만큼 사람이 성숙해진다면 나는 이번 기회에 무척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탈도 많은 한해가 내 앞을 지나고 있다. 새해엔 모든 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약력
한국수필 작가회 회원.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회장. 제2회 해외 한국수필 문학상 수상. 수필집‘낯선 숲을 지나며’2004년.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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