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김경순 회장 자비로 마련
많을 땐 30∼40명 거주…뿔뿔이 떠나
최근 비영리단체 등록…본격 활동나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 그래서 살아가는 게 힘겹다. 이역만리 고향을 떠나온 이민생활은 더욱 가슴 아리다.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지만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늘 가슴을 짓누른다. 농인들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사회의 벽은 높기만 하다.
지난 17일 오후7시 로렌스빌에 자리잡은 ‘한인 농인의 쉼터’. 한미농인협회 김경순(54·여) 회장과 공서희 사무국장이 수화로‘용우회’회원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이날은 용우회와 농인협회의 정기적 모임. 용우회는 1952년생 용띠들의 친목단체로 지난 99년 1월 결성됐다. 김동식 용우회장은 “정회원은 9명으로 농인협회를 2년째 후원해오고 있다”며 “일자리 알선 등 농인들의 말이 되고 발이 되어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6월 29일 문을 연 이 쉼터는 사실 김경순 회장의 자택이자 사무실이다. 건평 3천평방피트의 2층짜리 하우스로 10명까지 잘 수 있는 방이 4개, 화장실 3개, 풀장까지 딸려있다.
차별과 냉대,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뛰쳐나온 어려운 처지의 농인들에게 안식처인 셈이다.
청각장애를 겪는 공서희 사무국장은“많을 경우 농인 30∼40명이 거주한다”며 “미군 남편의 폭력 등 학대와 이혼으로 인해 집을 나온 여성들이 대부분”이라고 필담으로 귀띔했다.
이들은 몇달씩 묵다 문제가 잘 해결되거나 직장을 잡게 되면 떠난다. 성적쾌락을 위해 한인 농인여성을 초청했던 미군 남편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은 뒤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어떤 여성은 미국 수화를 몰라 법정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양육권까지 빼앗기도 했다는 것.
“농인들은 의사소통이 안되고 미국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 자칫 미국 남편으로부터 멸시와 놀림을 받게 되고 심할 경우에는 구타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쉼터’가 생긴 것도 이같은 사례 때문이다. 김경순 회장이 재미한인농인들의 인권옹호와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다 지난 94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남편 고 김광웅씨(한미농인협회 초대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어렵사리 빛을 보게 된 것이다. 2대 회장을 맡은 김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던 프리마켓을 팔아 보태 14만5천달러에 쉼터를 구입했다.
그러나 운영비가 만만찮아 자금압박에 시달린다. 회장이 월 1,500달러를 내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미국내 한인농인은 400∼500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아틀란타에만 13명이 있다. 이민온지 30년 된 김경순 회장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살다가 2년전 아틀란타로 이주했다.
어려운 가운데 지난달 농인협회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비영리 단체로 조지아주에 등록돼 라이선스를 받은 것이다. 비영리 단체로 인정받아 세금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주변의 도움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에 따라 농인협회는 오는 6월8일 회원들이 모은 의류 2백여점을 ‘사랑의 바자회’를 통해 팔아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불우이웃을 돕기로 했다. “여태까지 받기만 했으니 이제 조금이나마 갚을 때가 됐지요.”공 국장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올랐고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운 용우회 회원들도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했다.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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