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사진으로 본,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탄 일본 영화의 시골역장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내가 반세기 동안 타국살이를 청산하고 고국에 돌아가 해보고싶은 직업도 간이역의 역장이었다.
오래된 국어사전에 간이역이란 설비를 간단히 해놓거나 숫제 하지 않고 정거만 하는 역이라고 했다.
다시 새국어사전을 들추었더니, (주로) 시골 승객의 이용을 위해 설치한 작은 규모의 철도역이라고 했다. 주로 라는 단어에 ( )를 한 것부터 간이역이라는 총체적인 느낌은 소외감이다.
그런데도 나는 급행열차가 무시하고 지나버리는 그런 간이역의 역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골 역장이라는 하찮아 보이는 직책일지라도 그 자리는 역에서 평생을 봉사한 말단직원들의 몫이 아닌가. 그러니 자리를 뺏는다면 낙하산 인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 탓인가 이제는 크든 작든 간에 책임자가 되는 것이 싫다.
살아오면서 책임자라는 직함에 따라 본인은 물론 부하직원들의 실수까지도 곱빼기의 책임과 끔찍한 징벌이 되어 다가오곤 했었다. 그래서 이제는 나보다 어린 역장의 꾸지람도 그가 질머진 내 몫의 책임을 생각하면 달게 받고 싶다.
그동안 시원찮은 나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던 후배들에게 보석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넘치는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고 미약하지만 이웃에게 봉사하고 싶다. 불교에서도 이런 삶의 표적을 원(願)이라고 했다. 원이란 자기나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면 욕심이 되고 내 이웃과 사회를 위함이면 청정한 원이라고 했다. 어쩌면 상당히 거창해 보이지만 이제 출세나 재물의 축적이나 더더욱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싶다.
기차 타기 위해 뛰어가는 아이와 나보다 나이든 이의 손을 잡고 달려가 태워주고 싶다. 그러는 나를 보고 "아저씨 수고 많으셔유." 고향을 지키는 아가씨가 할머니 드리려 사오던 군고구마 중에서 한 개를 뇌물로 건네 준다면 이보다 뿌듯한 하루가 또 있을까.
구체적으로 나가보자. 경부선에서 빠지는 장항선, 대천을 못 미쳐 바다가 가까운 해미역 이면 좋겠다. 사실은 나도 그 역을 지난적은 있지만 한번도 내려본 적은 없다.
그곳의 역원이 되면 큰 기차(비록 완행 열차이긴 해도)를 세우는 깃대를 들고 해미 사람들을 기다린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만큼 큰 희망이 또 있는가. 새끼 열차들을 줄줄이 달고 달려오던 열차가 서고 사람들이 내린다. 지친 모습에도 자기를 기다리는 이에게 달려 갈 때는 힘이 솟는다. 그들은 철길 옆 코스모스처럼 서로서로 몸을 비빈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어느덧 그곳 정착민이 되어버린 내게도 딴 세상의 호기심을 전해 준다.
고향에서 피로가 풀리고 몸을 추스린 이는 다시 떠난다. 아무리 달려도 만날 수 없는 두개의 철길처럼 영원한 이별이 있는가 하면, 잠시 헤어짐이 있다. 아무튼 이별은 그 아픔만큼 체내의 세포를 죽이는 잔인한 짓이 아닐까. 보내는 가족이나 친지만큼이야 하겠는가 마는 깃발을 흔들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랄 뿐이다. 진심으로 활짝 웃어 준다면 불안한 여행일지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인생은 가고 오는 것만큼 성장한다. 몽고에서는 10세가 되면 말을 타고 끝없는 광야를 달려 미지의 세계를 달려갔다 오는 성인식을 갖는다. 달려온 아이들을 말에서 내려 꽁꽁 얼어버린 손과 발을 눈 속에 넣어 녹여주고 나면 아이에게서는 떠날 때의 여린 눈은 찾아 볼 수 없이 강인해 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내면 또 누군가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인생사다. 보낼 때 죽어 버린 세포는 만남의 기쁨으로 소생 될 것이다. 기다림의 그리움이 쌓이면 별이 된다지 않는가, 보내는 가슴에 쌓이는 아픔으로 간이역 주변에 슬픈 꽃을 피운다.
어디 사람만 보내고 맞는가. 세월을 보내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되고 해를 떠나보내면 어둠을 맞는다. 그러면 영락없이 이태준의 수필, 정거장의 밤 풍경도 역에 내릴 것이다.
"불시정차(不時停車).. 무슨 고장인가 하고 내다보면 박쥐처럼 오락가락하는 역원들이 있고... 깜박깜박하는 남폿불이 보인다.... 밤의 실물을 느끼곤 하였다... 정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아늑함을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을 속에서.... 불투성이 정거장만 지나오면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내 신경에는 그렇게 캄캄한 정거장에 머물러주는 것이 도리어 고마웠다. 훌륭한 산수(山水) 앞에 서주는 것만 못하지 않았다. "
나도 플랫포음에 서서 하루하루 기다리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산모퉁이 돌아오는 기차가 언젠가는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던 이들을 실어오지 않을까.
그들과 함께 근처의 태안 읍내에 찾아가 토담집의 알이 성글성글 꽉 찬 꽃게장(1만8천원)도 먹어보고, 광장식당에서 굴, 조개로 우려낸 국물에 김치를 씻어 송송 썰어 넣고 끓인 김칫국(5천원)에 밥 말아 훌훌 떠먹어 보고도 싶다. 더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뽑아 정리해 둔다. 이런 상상이나 자료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