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힘들 수도 있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사춘기, 각 가지 위문과 고민이 많은 봄 철의 사춘기는 더더욱 그렇다.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낳을 때 기뻤어?’ ‘물론 기뻤지’ ‘엄마, 정말 고마워, 딸인데도 기뻐해 줘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삶의 희비(喜悲)와 명암(明暗)의 원천인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늘 평등한 동반자이기를 지향해 왔지만 여성은 오랜 세월을 두고 노복(奴僕)처럼 굴종을 강요당한 비(悲)와 암(暗)의 역사였다.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의 중요 기능이었던 복종과 생산을 묘사한 여성상으로 흔히 ‘펄 벅’의 거작 대지(大地)에 나오는 "오란"(阿藍)을 거론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1970년대초 동양방송(TBC)이 근 1년 가까이 250여회에 걸쳐 방영한 일일연속극 ‘아씨’가 있었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이 ‘아씨’의 주제가가 애절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밤이면 집집마다 일찍 귀가한 남편과 식구들이 TV 앞에 모여든다.
엄격한 한말 가부장제도 아래서 오로지 복종을 미덕으로 여겨 온 시대를 살아 온 한 여인의 일대기, 울기도 하고 울분하기도 하면서 시청했던 "아씨’, 그 여인이 살아온 길이 곧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의 길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씨’ 이후 강산이 변해도 여러 차례 변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 주변에는 다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여성들이 아직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자기 딸에 대해서도 자긍심이 없는 자기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 자신"이라고 오늘도 여성지(女性誌)가 외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딸이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 나 낳을 때 정말 기뻤어?’ ‘물론 기뻤지’ ‘엄마, 정말 고마워, 딸인데도 기뻐해 줘서’
‘엄마가 원한 것은 바로 너야.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바로 너를 원한 것이었어’ ‘엄마 정말이지? 엄마 고마워’』
그날 저녁 딸아이는 엄마에게 다시 "엄마,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엄마 빰에 입을 맞추고 흐뭇해했다. 그 순간, 엄마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엄마의 말로는 집에서 딸이라고 섭섭해 한 적도 없었고 자매 둘 뿐이라 아들과 차별한 적도 없었는데 벌써 딸은 세상이 딸과 아들을 달리 대한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고 했다.
세상에 이같이 아름다운 모녀간의 대화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딸의 질문에 대한 엄마의 당당한 답변도 훌륭했지만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 엄마가 그 주 일요일에 나도 우리 엄마에게 더 늦기 전에 내 딸에게서 배운 말을 해드려야겠다면서 찾아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성을 인식하게 되는 시기는 생후 2년 반에서 3년쯤이라 한다.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해야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예쁘고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들이 우는 것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나무라거나, 딸이 예쁘다고 지나치게 치켜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감정표시를 못하는 남자로 만들고, 외모가 최고의 미덕이라는 인식을 여자가 갖게되기 때문이다.
TV나 가정 또는 사회생활에서 성차별에 관한 고정관념을 보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여자사관후보생, 여자종군기자, 여자트럭운전기사, 남자미용사를 목격하면「직업은 남녀 모두에게 개방된 것」이라고 말해 준다.
가정에서 남자가 조리, 설거지, 차 시중, 청소하는 것을 목격하면 「가사노동은 생산활동의 하나이며, 가족 구성원 전체의 몫이라는 점」을 말해 주고, 직장에서 사환이 아닌 여직원에게 차 시중을 요구하는 관례도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최근 한국의 한 대학에서 젊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자기 삶에서 가장 큰 관심사를 조사한 결과 ‘자식’과 ‘외모’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한 여성들이 자신을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 오직 ‘자녀의 성공’과 ‘자신의 외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 자신이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성에게 있어 자녀를 기르고 외모를 가꾸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여성보다 건전한 여성이 더 중요하다. 건전한 가정 그리고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여성만이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눈가의 주름을 걱정하고 유아용 영어교재를 고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가치관도 아울러 딸들에게 인식시켜주고 스스로 실천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한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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