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쾌의 세상 틈새 읽기]
▶ 임승쾌 편집국장
32년전의 일이니 아스라하다. 그러나 그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1970년 초 CBS 공채 1기생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다. 수습 3개월을 거치면서 이것이 앞으로 나의 장래를 맡길만한 직업인가 몇 번의 회의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오늘까지 정확하게 32년을 보냈다.
수습기자,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기자 초년생 시절. 정말 낮·밤 모르고 물·불 가리지 않고 발로 뛰었다. 그러기를 7년. 美國 땅을 밟고 나서도 동아일보, 한국일보 기자, 다시 한국에 역이민(?)해 CBS 근무, 또다시 미국에 와 한국일보 근무. 이러기를 꼬박 3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CBS와 미주 한국일보는 나의 32년 언론계 생활 대부분을 보낸 곳이니 더욱 정감 어린 일터였다. "너는 한국에 가면 CBS, 美國에 오면 한국일보"라며 비아냥거리던 친구의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해보고 싶은 정치부장도 해봤고 사생활이 철저하게 무시된 사회부장도 지내봤다. 인기프로 [뉴스 레이다] 아침방송 앵커도 4년 동안이나 지켰다. 그뿐 아니라 大田방송 본부장(사장)도 지내봤으니 내 능력에 닿는 만큼은 올라가 본 셈이다. 더구나 1997년 대통령 후보들의 페날리스트로 선정된 것은 방송기자로서의 자랑거리로서도 손색이 없을 터이다.
한국일보 샌프난시스코 支社에서도 오늘까지 편집국장 자리를 8년 2개월 동안 지키고(?) 있었으니 신문기자로서는 원도 한도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잘도 버텨낸 셈이다.
그러나 오늘로서 편집국장의 칼럼으로서는 이것이 마지막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어찌 섭섭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한국일보에 들어와 한국에서 못해본 별난 취재도 많았고 [포그·혼], [임승쾌의 서울 기상도], [임승쾌의 세상 틈새읽기]등 칼럼난에서도 졸필을 마구 휘둘러 대기도 했다.
그 졸필에 독자 어느 분은 마음 상하거나 기분 나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읽어 내려가다 던져버렸을 칼럼도 있었을게다. 그런가 하면 어느 분은 아주 마음에 꼭 드는 얘기라며 격려의 전화를 해 주던 기억도 더러난다. 그리 크지 않은 한인 교포 社會의 일을 소재거리로 삼았으니 좋고 나쁨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올 때가 많았다.
미주 한인 교포사회의 특성은 한인교포가 사는 미국內 어느 곳이든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지만 잘 뭉치지 못하고 심지어는 한 단체내에서의 갈등도 표면에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던가?
20여년전의 한인사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양적·질적인 면에서 굉장한 발전을 했고 또 한인단체끼리 단합해 주류사회에 한 목소리를 내는 일도 흔해져 보기에 굉장히 좋다.
게다가 1.5세, 2세들이 이끄는 단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1세와 판이하게 다르다. 고정의 관념이 깨진지는 더 더욱 오래 전의 일이 돼버렸다.
진취적인 사고방식에 행동도 날렵하다. 몇몇 단체들의 하는 활동에서 그런 냄새가 확 풍긴다. 언젠가는 와야할 것들이고 보면 당연한 사회적 현상들이다.
제발 1세들의 고정관념과 기존 방식 지키기가 부서지기를 바란다. 다만 과거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그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도록 조언과 충언으로 1세들의 역할은 족하다고 본다. 그래야 후배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가 바로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신문이나 방송, 언론의 구조도 이와 같은 사회현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고 본다. 한자리를 오래 지켜 소위 말하는 ‘노하우’가 붙었다하더라도 그 자리가 자기만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고정관념과 기존의 틀을 부술 수가 있는 것이다.
"아직은 아무도 나만 못하다"는 자기 도취적인 생각으로 자리 지키기에 연연한다면 남이 보기에도 그것은 分明히 추한 꼴이다.
다음 사람, 아니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결단도 내릴 줄 알아야 박수를 받는다. 철저한 내 변명이지만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나의 생활신조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철학이다.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 회사의 케치 프레이즈가 무언줄 아느냐고 어느 분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글쎄, 뭘까요?하며 대답하기를 망설이던 나에게 그분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벤즈를 앞지르자" 뭐 그런 것 아닐까요하고 생각한단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답은 상상을 초월했다.
"도요다를 때려 부수자"였다.
현재 잘 나가는 도요다로 만족할 수 없고 그 만족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을 고정관념 내지는 기존의 틀을 부셔야 도요다가 거듭날 수 있다는 그분의 부연설명이었다.
* * *
지난 1991년 11월. 나는 난생처음으로 책을 한 권 출판했다. 그동안 한국일보에 써온 글을 모은 것이지 뭐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책의 이름이 "박수칠 때 떠나라"였다.
10년이 넘은 지금 불현듯 그 책이름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섭섭하드라도 박수칠 때 떠날 줄을 알자.
좀 아쉽고 섭한 생각이 날 때마다 당분간 내 입 속에선 "박수칠 때 떠나라"가 중얼거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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