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창]
▶ 노재경 (국제회의 통역사)
수년 전에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기 전까지 내게 "무위"란 "무위도식"의 첫 두 글자에 불과했다. 그 책이 섭섭하게도 나에게는 전혀 마음에 와 닿는 바가 없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저자가 한국 선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한국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했을 것으로 나름대로 생각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가지 그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책의 2권 중 1권 159쪽에 나오는 1995년 현암사에서 펴낸 <도덕경>의 편역자 오강남 교수의 "무위"에 대한 설명이다.
약간 길지만 독자들과 함께 읽고 한 번 생각해 봄 직 해서 여기에 적어본다.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도식 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인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 즉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유를 가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이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인인가?"
법을 법이라 할 때 이미 법이 아니라고 했듯이 행동이 행동같이 느껴질 때 이미 행동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 단락을 읽고 나는 나 자신이 상당히 부끄러워졌다. 도대체 "무위"의 경지에 도달한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에는 얼마나 부족한 나 자신인가?
20년 전 한국을 떠나오기 전날 밤 수많은 학교 친구들에게 전해준 이별의 편지 내용은 다 달랐지만 "항상 진실하려고 노력했던 친구 재경이가"로 편지는 한결같이 끝나 있었다. "항상 진실했던 친구"라고 감히 못 적었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진실과 무위를 마냥 좇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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