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치하에서 운이 핀 사람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하메드 이삭(45)일 것이다. 그는 1990년에 옷감 수입업을 하다 망하자 남은 물건을 가지고 아프간의 틈새 시장을 피난처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아프간 북부 지역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눈에만 스크린을 단, 현지 사람들은 ‘파랑기’라 부르는 부르카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은 별로 없었다. 아프간에서 가장 서구화되고 진보적인 도시인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 부르카는 보수적인 작은 마을에서 온 촌로들 몇 명이 아내에게 주려고 살뿐이었다.
그러다 이삭이 부르카를 만든지 2~3년만에 탈레반이 모든 아프간 여성들에게 의무적으로 입게 함으로써 그에게 황금의 기회가 찾아들었다. 한 2~3년간은 큰 재미를 봤다고 이삭은 말한다. 특히 탈레반이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하고 모든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강제로 입힌 1998년 이후 3년 동안은 아프간 북부 전 지역 남자들이 찾아와서 한번에 100장, 200장씩 사갔다. 더 외진 지역에서 되팔 것들이었다.
지난 달 탈레반이 이 도시에서 쫓겨나면서 이삭은 제일 먼저 수염을 깎아버렸다. "탈레반은 잘한 일이 없었어요. 나도 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물가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벌진 못했어요"
탈레반은 아프간의 시장까지 고립시켰다. 국경에서 40마일 떨어진 마자르 이 샤리프는 예전부터 주요 무역 중심지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물자들이 왕래했으나 탈레반 집권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국경을 봉쇄, 대부분의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고 이삭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이 써야만 했다.
그가 이념에서가 아니라 비즈니스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부르카는 몸은 물론 손까지 감싸는, 참 어색한 옷이다. 바깥을 잘 살피려면 눈 부위의 스크린을 바짝 잡아당겨야 하기 때문에 손을 뺨까지 올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부르카를 쓴 여자들은 걷는 모양도 이상하다. 발 밑의 물웅덩이나 쓰레기 같은 것이 잘 보이지기 않기 때문이다.
부르카 하나를 만드는데는 천이 7야드나 든다. 뒷판에는 잔주름을 잡아 머리에 쓸 모자 위에 이어 박고 앞판은 보통 꽃무늬 수를 놓는다. 대부분의 부르카는 흰색 아니면 하늘색으로 흰색은 젊은 여자, 나이든 여자는 하늘색을 입는다.
마자르 이 샤리프 시 중앙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은 이삭의 작은 가게에는 부르카들이 수십개 걸려 있다. 파키스탄제 폴리에스터로 만든 것이 가장 싸서 하나에 5달러 정도, 최고급품은 한국산 폴리에스터로 만든 것으로 30달러까지 한다. 이 가게 하나로 이삭은 3가정을 먹여 살렸다. 봉제를 맡은 자기의 세 딸을 포함, 40~50명이 이 비즈니스로 먹고살았다.
탈레반이 떠난지 한 달이 지났지만 마자르 이 샤리프의 여성들은 아직 부르카를 입고 있다. 활짝 벗어 던지기에는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다. 그렇지만 여자 혼자 거리에 나와 다니고 굽 높은 구두도 신으며 시장도 혼자 보러 다닌다. 이들이 부르카를 벗어 버려 장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이삭은 생각한다. 두어 달은 그냥 지나겠지만 3월에 학교가 개학을 하면 여학생들과 교사들은 부르카를 입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바로 자기의 딸들부터 부르카를 벗겨서 학교로 보낼 생각인 이삭은 생업을 잃을 일이 별로 섭섭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탈레반 치하에서 덕을 본 사람들조차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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