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Game’. 한국어로 따로 번역된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그냥 ‘그레이트 게임’으로 통용된다. 다소 클래식하게 들리는 이 정치외교 용어가 요즘 새삼스레 소환되고 있다.
1900년 미국 해군의 제독이자 전략지리학자인 알프레드 머핸은 일련의 논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냈다. ‘아시아의 문제(The Problem of Asia)’가 그 책의 제목이다.
러시아가 새로운 파워로 부상했다. 이와 맞물려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불안정성 가중과 함께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그 상황들을 열거하면서 머핸은 ‘아시아의 문제’의 원흉으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러시아세의 팽창과 함께 불안정한 상황에 봉착한 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일본, 한반도, 중국 본토, 대만, 남중국해, 인도, 파키스탄, 벵골 만, 아프가니스탄, 아라비아 해, 페르시아 만, 이란, 석유자원이 풍부한 카스피 해 분지, 오늘날의 튀르키예, 홍해, 레반트 해, 동지중해를 망라한 북위 30도에서 40도 사이에 걸쳐 있는 광대한 아시아 벨트 전체가 망라돼 있다.
19세기 말 머핸이 활동하던 시기에 영국과 러시아제국은 이 아시아 벨트를 놓고 거대한 지정학적 싸움에 몰입해 있었다. 부동항을 확보를 목표로 러시아는 남진정책 펴고 있었다. 반면 영국은 인도지배 유지를 목표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었던 것.
그 두 세력은 결국 충돌 한다. 크림전쟁(1853~58)이 그 하나다. 이후 전선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멀리 극동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1885년 영국해군의 거문도점령도 그 일환으로 조선침탈보다는 러시아남진 저지가 목표였다.
그러니까 1830년 무렵부터 1차 세계대전 전 까지 영국과 러시아가 유라시아 패권을 놓고 벌인 이 지정학적 충돌이 바로 ‘Great Game’이다.
한 세기도 훨씬 전에 머핸이 ‘아시아의 문제’에서 지적한 지역들이 그런데 그렇다. 시진핑의 중국이 2013년부터 중화제국의 야망을 펼치기 위해 제시한 일대일로(一?一路)정책, 다시 말해 경제력을 지렛대로 지정학적 야망을 충족시키려는 중국의 해외거점 확산기도 정책, 그 전략 지도에 이 지역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무엇을 말하나. 19세기 ‘아시아의 문제’의 원흉이 러시아였다면 오늘날에는 중국이란 얘기다.
첫 번째 Old Great Game이 영국과 러시아의 다툼이었다면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두 번째 New Great Game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싸움이란 것이 프로비던스 저널의 지적이다.
중국의 목표는 다른데 있지 않다. ‘세기의 치욕(1839~1949 - 아편전쟁에서 중국공산당 정부수립 전까지의 기간 동안 열강으로부터 받은 수모)’의 설원(雪?)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100주년이 되는 오는 2049년까지 중국이 수퍼 파워로 등극해 세계를 지배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도 다름이 아니다. ‘백년의 마라톤’ 저자 마이클 필스버리에 따르면 팍스 아메리카나를 뛰어넘어, 천자(天子) 나라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으로 같은 맥락이다.
머핸 시대에 러시아는 노쇠해 숨을 헐떡이는 중국을 놓고 서방 열강과 다투었다. 오늘날에는 중국이 러시아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유라시아지역의 지정학적 다원주의 교란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프로비던스 저널의 지적이다.
‘유라시아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지역까지 전선이 확대된 오늘날의 경쟁은 대륙세력(Continental Power)과 해양세력(Maritime Power)간의 갈등의 반복, 그 최근 버전이다.’ ‘New Great Game’에 대한 포린 어페어스의 진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략은 전형적인 해양세력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개방적이고 민주가치를 지향하는 가운데 해상무역과 상업을 통한 공동의 경제적 번영 추구가 그 기본 구조다.
이 같은 경제적 이해와 가치관이 반영돼 미국을 비롯한 서방 해양세력의 합의에 따라 조성된 전후 국제질서가 바로 ‘규칙에 기반 한 질서(Rules-Based Order)’다.
폐쇄적이고 독재적 성향이다. 약탈적 영토 확장이 국가전략의 핵심을 이룬다. 대륙세력의 특성으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대륙세력이 블록을 결성해 이 ‘규칙에 기반 한 질서’ 파괴에 나선 것으로 포린 어페어스는 ‘New Great Game’의 경쟁의 양태를 설명하고 있다.
왜 ‘규칙에 기반 한 질서’ 파괴에 그토록 안달인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그 존재 자체로 유라시아대륙 독재국가들에게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Old Great Game은 반세기이상 전개됐다. New Great Game은 단순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갈등 범주를 넘어섰다. 공중 파워, 우주 파워, 사이버 파워, 인공지능(AI)파워의 경쟁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 경쟁은 더 장기화 될 수 있고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는 거다.
여기에서 시선은 한반도로 쏠린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다. 그리고 ‘전체주의 축’과 민주주의 세력이 부딪히는 최전선이다. 이 같은 입지조건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국이 이재명 이후 이상한 흐름의 결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위험천만한 이 New Great Game에서 대한민국은 서방, 해양세력의 일원으로 존속하면서 계속 문명의 꽃을 피워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뭔가 불안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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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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