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접할 때마다 의문이 들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시절은 언제인가. 요즘 뉴욕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맨해튼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데카콘(Decacorn·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수없이 탄생한다.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사상 처음으로 30조 달러를 넘어서 세계 GDP의 26%를 차지한다고 봤다. 중국 추격이 거세다지만 지난해 기준 중국 GDP는 미국의 63.5% 수준에 그친다. 1995년 일본 GDP가 미국의 71% 선이었으니 당시 일본보다 지금의 중국이 경제력으로 위협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미국은 쇠락했으므로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구호는 엄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중소 도시와 시골길에서 찾아야 한다. 중남부 중소 도시에 산재한 100년 전 마천루와 번영했던 다운타운의 초라한 자취들, 19세기 중반 미시시피강을 가르는 폭포에 시멘트를 부어 높이 15m, 길에 550m에 달하는 보(洑)를 만들던 압도적 공업력, 20세기 초반 그랜드캐니언에 기찻길을 뚫고 관광업이 성황하던 경제력, 100년 전 잘 닦인 도로를 따라 포드 모델T를 타고 백두산보다 높은 설산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산층. 미국이 세계의 공장이 돼 세계 GDP 40%를 도맡던, 누구나 열심히만 일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던 그 때가 미국인과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시절’인 셈이다.
미국의 주는 개별 국가에 가깝다. 태어난 주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들도 절반이 넘는다. 현재 미국 경제의 ‘지표적 성장’을 이끄는 뉴욕·캘리포니아와 쇠락한 도시의 상징인 미시시피·웨스트버지니아 등 중남부의 1인당 GDP 격차는 2배에 달한다. 쇠락한 다운타운에서 낡은 마천루를 바라보는 중남부인들에게는 고공 행진하는 주가, 혹은 수십억 달러를 받는다는 인공지능(AI) 연구자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마가’는 철저하게 이들의 절망을 파고들고 있다.
선진국 제조업이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높아진 생활 수준에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기 힘든 탓이다. 그렇게 영국이 미국에, 미국이 일본에, 일본이 한국에, 한국이 중국에 ‘세계의 공장’ 지위를 넘겨줬다. 미국 역시 ‘위대했던’ 시절부터 이민자로 노동력을 채워왔다. 악명 높은 노예제는 말할 것도 없다. 서부 개척 시절 동원된 중국계 ‘쿨리’는 사망자 집계조차 어렵다. 현재도 노동의 하부는 이민자가 채운다.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 하는 우버 기사들이 과연 합법 이민자일까. 이처럼 선진국 경제는 ‘음지’에 자리한 저렴한 노동력에 기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마가 진영’이 외치는 미국 제조업 부활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진정성도 의문이다. 정녕 제조업 부활을 원한다면 더 많은 이민을 받아야 하지만 정책은 거꾸로 간다. 지지층이 원하지 않아서다. 로봇으로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도 기술적 난제보다 직장을 잃은 유권자 반발을 넘기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조업 부활을 기치로 블루칼라 표를 얻어온 공화당이 제조업 부활을 현실화하기 가장 힘든 세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어떤가. 지난주 온 국민이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던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발표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로 최악은 피했다. 절대적인 힘은 이내 균열을 내기 마련이다. 당장 미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러나 설비투자는 한번 이뤄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위대한 미국’의 향수에 우리까지 취할 필요는 없다. 일단 소나기는 피했으니 득실을 따져 속도 조절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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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혁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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