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교외지역에 자리 잡은 ‘새 둥지(The Bird’s Nest)’라는 곳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각처에 살던 새들이 모여 둥지를 트는 곳 - 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이곳은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여성들로 구성된 작은 커뮤니티이다. 게이트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으니 안전하고, 몇 분 운전하면 바로 프리웨이이니 접근성 좋고, 달라스 다운타운까지 한 시간 거리이니 너무 동떨어진 시골도 아니고, 무엇보다 재정적 부담 없이 노년을 보낼 수 있으니 여러모로 마음 편한 곳이다.
‘새 둥지’는 5에이커의 부지에 14개 작은 집이나 모빌홈이 터를 잡을 수 있도록 조성된 모빌홈 팍 같은 곳. 현재 11명의 여성들이 각자 초소형 주택이나 모빌홈을 가져와 정착해 살고 있다. 부지 렌트비는 월 450달러. 주민들은 아기자기한 작은 집 주변에서 텃밭을 가꾸고 닭들을 키우며 평화롭고 한갓진 생활을 하고 있다. 각자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자율적 삶을 사는 한편 커뮤니티 센터에 모여 카드놀이를 하거나 TV를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매일 얼굴 보며 웃고 대화하고, 서로 돕고 돌보니 명실 공히 이웃사촌들이다. 노년에 외롭다면, 재정적으로 불안하다면, 한번쯤 선택지로 고려해볼 만한 삶의 방식이다.
노년에 닥치는 어려움으로 한국에서는 네 가지 고통, 4고(苦)를 꼽는다. 질병(病苦), 빈곤(貧苦), 고독(孤獨苦), 무위(無爲苦)이다. 은퇴 후 돈 없고, 곁에 가족 없고, 할 일 없는 고통들, 여기에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까지 더해지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만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황혼이혼 증가로 노년에 혼자 사는 인구는 늘고, 생활비가 너무 올라 소셜연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우며, 살아야 할 날들은 길어졌다. 사회안전청(SSA)에 따르면 은퇴자의 40%는 은퇴 후 수입의 절반을 소셜연금에 의존한다. 퇴직 후 은퇴자들이 받는 평균 소셜연금은 월 1,975 달러. 1년에 2만4천 달러가 안 된다. 그런데 이 돈이 수입의 전부인 은퇴자가 남성의 12%, 여성의 15%에 달한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살 경우 경제적 어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022년 댈러스 인근 컴비에 은퇴 커뮤니티 ‘새 둥지’를 만든 로빈 예리안(70)도 사정이 비슷했다. 1993년 이혼 후 달라스에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웠던 그는 항상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았다. 그런 그가 초소형 주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6년 TV 프로그램 ‘작은 집 나라(Tiny House Nation)’을 보고 나서였다. ‘작은 집’은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펼쳐진 사회운동.
이듬해인 2017년 로빈은 투 베드룸 작은 집을 5만7천 달러에 짓고, 집터를 임대하는 작은 집 빌리지로 이주했다. 그렇게 몇 년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보니 은퇴 후 생활이 걱정되었다. 돈이 없는 것이다. 많은 싱글 여성들이 노년에 맞는 공통된 문제이다. 미국은퇴자 협회(AARP)에 따르면 50-64세 사이 직장 가진 싱글 여성 중 64%(남자들의 경우 50% 정도)는 은퇴자금으로 모아둔 게 5만 달러가 안 된다.
그래서 그가 구상한 것이 ‘새 둥지’였다. 자신을 비롯, 여성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401(k)에서 인출해 부지를 사고, 허허벌판에 전기며 물을 끌어들여 ‘둥지’를 만들었다. 그러자 생각과 형편이 비슷한 여성들이 일리노이, 테네시, 애리조나 등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노년에 든든한 이웃사촌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인사회에도 외롭고 돈 없는 노년층이 많다. 서로 정 나누며 의지하고 살 노년의 둥지를 누군가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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