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소설가 그윈 그리핀이 쓴 2차세계대전 소설 ‘작전상의 필요’는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 해상 교전규칙에 따르면 침몰한 배의 생존자들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의 한 잠수함 함장은 침몰한 프랑스 함정의 생존자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행여 그들중 누군가가 자신이 지휘하는 잠수함의 작전 지역을 발설할 경우 부하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종전후 군사법원이 독일 지휘관이 내린 명령의 위법성을 조사하는 대목에서 극적인 정점에 도달한다.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에서 미군은 마약 운반선으로 여겨지는 선박을 폭파했고, 배의 잔해에 매달려 있던 두 명의 생존자들을 죽이라는 헤그세스의 명령은 작선상의 필요로 정당화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소식통을 통해 그의 명령을 보도했는데, 그중 한 소식통은 “전원 사살하라는 명령이었다”고 말했고, 헤그세스는 이를 명시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헤그세스로부터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말이 사실이라면 헤그세스가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선박 파괴 작전을 수행한 현장 지휘관은 헤그세스의 명령에 따라 생존자들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이 죽임을 당한 후 44일이 지난 시점에 미군 남부사령부를 지휘했던 4성장군이 사임의사를 밝혔다. 사령관의 임기는 보통 3년인데 취임 1년만에 스스로 물러나는 셈이다. 그는 자진사퇴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추론은 가능하다.
도덕적 시궁창에 빠진 트럼프 행정부에 의한 베네수엘라 생존자 살해는 미국인들의 구토를 자아냈다. 부끄러움을 알지못하는 국가는 위험하며, 스스로에게 더욱 그렇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이 이같은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국무장관 겸 트럼프의 국가안보 보좌관인 마르코 루비오는 28개 항의 우크라이나 분할 계획이 공개됐을 때까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의 관리들이 엉성하게 짜맞춘 것이다. 그 내용은 블라드미르 푸틴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받고 싶은 선물’ 목록처럼 읽힌다. 거의 4년에 걸친 공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수중에 넣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영토를 양도하고, 나토의 회원구성과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결성 및 우크라이나군의 규모에 관한 결정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계획의 골자다.
필요에 따라 신념을 바꾸기로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무한대의 가변성을 지닌 것은 아닐 터인 루비오는 상원의원 시절의 전 동료들에게 이 플랜은 그저 게임을 시작하는 러시아측의 영리한 첫 수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게 수일내에 이 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정확하고 절제된 연설가인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공화-사우스다코타)은 양당 상원의원들 사이의 컨퍼런스 콜에서 루비오로부터 28개항 플랜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제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라운즈 의원에 따르면 루비오는 “우리의 협상팀 가운데 한명에게 전달된 러시아측 제안을 수령했지만 이는 우리가 추천한 내용도, 우리가 제시한 평화안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루비오는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 계획안은 “미국이 작성했다”며 자신의 이전 발언을 번복했다.
이같은 갈짓자 행보는 현 행정부의 특징인 무능 이상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일 수있다. 어둠이 짙어가는 세계에서 번영을 구가하는 민주국가들의 체계적 약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하버드대 사회학자인 대니얼 벨은 1976년도에 발간한 저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점’에서 자본주의의 성공이 자본주의의 도덕적, 행동적 선결조건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풍요는 현재에 충실한 방종한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검소, 근면성, 규율과 만족을 뒤로 미루는 태도를 약화시킨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문화적 모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다수는 적자로 운영되는 정부의 혜택에 찬성한다. 이는 차세대에게 국가의 채무를 넘겨준다는 점에서 그들이 누려야 할 부를 징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지혜택은 국가안보 조항을 밀어낸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마취적인 의존은 외적 위험에 대한 내향적 무관심과 냉혹한 진실에 대한 회피를 만들어낸다.
프랑스군 참모총장은 두 주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스크바 정권을 단념시킬 방법을 알고 있고 경제 및 인구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 단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정신이다. 만약 우리 나라가 자식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군수품 생산에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려 든다면 우리는 정말 위험에 처하게 된다.”
푸틴은 프랑스인들이 이 발언에 겁먹고 움추러든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크라이나 협상안과 베네수엘라 선박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일관된 이야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아마도 오래전에 월터 스캇이 간파한 바와 같다: “속임수를 처음 꾸미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뒤엉킨 그물을 짜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엮어놓은 속임수의 그물망에 걸려든 이들은 바로 미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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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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