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침체기의 임금상승률 중산층 뒷걸음·상위층 껑충
▶ 헤지펀드 운영자 25명 수입 유치원 교사 총액보다 많아... 80%가 “미국 경제 비관적”
[‘소득 불균형’ 우려 고조]
미국 경제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경제를 좀먹는 쌍둥이 주범으로 소득 불균형과 제자리걸음을 하는 임금을 꼽는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이 두 가지 고질적 병증을 제거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연방준비은행(Fed)의 ‘정책선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강력한 임금상승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물가상승 억제라는 명분을 내걸어 경제 회복세를 늦추려 시도해선 안 된다는 경고다.
이와 동시에 EPI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중·저소득층에 속한 근로자들의 임금 협상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근로기준을 지지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의 건강회복을 위해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저임금 인상, 시간외 근무 확대, 서류미비 근로자들의 노동권 보호와 단체 협상권 회복 등을 담보하는 정책안이 반드시 입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 상위 1% ‘부의 독식’ 심화
임금 불평등은 지난해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경기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찾아들기 직전 해인 2007년, 증산층에 속한 미국 가정 60%의 소득은 전체 평균 임금 성장률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면 23%(1만8,000달러) 정도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최상위 소득계층의 임금 성장폭이 워낙 큰 탓에 중간소득 가정의 임금상승률은 전체 평균 상승률에 못 미쳤다. 최상위 1% 소득계층의 연간 임금 성장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그 아래 90~95퍼센타일에 속한 고소득 그룹의 임금상승률조차 전체 평균 임금상승률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소득분포대의 하위 90%에 속한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률이 전체 평균치를 밑돌았음을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부의 편재 현상과 소득 불균형이 확대됐다는 얘기다.
1944년 소득 최상위권 1%는 미국 전체 수입의 11%를 가져갔다. 2012년에 이르면 이 수치는 23%로 올라간다.
인플레를 감안한 2014년의 조정소득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2009년에 비해 약 2,100달러,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던 2001년에 비하면 3,600달러나 낮은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소득분포 곡선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조정임금은 1979년 이후 35년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의 소득 불균형은 선진국들 사이에 조롱거리가 됐다. 연간 소득이 3만달러에 못 미치는 미국 가정의 3분의 2는 각종 페이먼트를 납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 ‘빈익빈 부익부’
1979년에서 2013년에 이른 34년에 걸쳐 하위 70%의 소득계층에 속한 미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11% 성장에 그쳤다. 이를 연율로 환산하면 0.3%에 불과하다.
또한 미국 350대 상장기업의 총수와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격차는 1965년 20배였으나 2014년 현재 354배로 벌어졌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임금 격차가 까마득하게 벌어지면서 부자는 더 풍요로워지고 가난한 자는 더 궁해지는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금과 소득 격차에 대한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2일 워싱턴 DC의 조지타운 대학에서 열린 빈곤 극복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해 “헤지펀드 운영자 25명이 미국 유치원 교사 전체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며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헤지펀드 운영자들이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법률상 허점을 없애고 그들이 얻는 수입에 대해 정당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앞서 지난 5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상위 25개 헤지펀드 운영자가 지난해 모두 116억2,000만달러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최근 자료인 2012년을 기준으로 특수교육 종사자를 제외한 미국의 유치원 교사 15만8,000명의 평균연봉은 5만3,480달러로, 이들의 총 수입은 지난해 헤지펀드 운영자 25명의 수입보다 적은 85억달러라고 전했다.
▲ 임금과 생산성 심각한 엇박자
미국인 절대다수의 시간당 임금과 생산성은 2차 대전 이후 30여년 간 보조를 맞춰 증가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어깨동무 행진은 1970년대 말 깨어졌다. 노동력과 자본력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월가와 메인 스트릿으로 대별되는 부의 양극화는 근로자 임금과 생산성의 부조화에 뿌리를 대고 있다. 둘 사이의 엇박자가 소득 불균형의 바탕에 놓여 있는 셈이다.
1970년대 말 이후에도 경제는 건실한 성장을 계속했지만 이에 따른 과실은 자본을 쥐고 있는 상위소득 계층이 독차지했다. 현재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풀타임 근로자의 중간소득은 여전히 1980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1년 사이 1인당 실질생산은 연 2.5% 증가를 기록한 반면 실질임금 성장률은 1% 아래로 내려갔다. 또한 1979년 이후 생산성은 임금보다 8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반 근로자의 임금과 생산성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임금과 소득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방 최저임금 인상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저성장 시대’의 그늘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경기 대침체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2%를 맴도는 ‘저성장 시대’의 막을 올렸다. 이는 역대 평균 성장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저성장 시대’의 후유증은 저임금과 파트타임 일자리가 고임금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규직 일자리는 고용이 정점을 찍었던 2007년의 수치에 비해 230만개가 줄었다.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라진 일자리에 비해 임금이 평균 23%가 적다.
게다가 비정규직 근로자가 미국 전체 취업인구의 19%를 차지한다. 저임금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전체 취업자의 절반가량은 현재의 임금은 생계비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퓨리서치 센터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서 응답자 전체의 5%만이 임금이 생계비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45%는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실직, 페이먼트 체납 등의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상황 개선의 기미는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자체적인 서베이를 토대로 미국 기업들이 높은 기업세와 각종 규제 이행에 따르는 경비, 종업원들의 헬스케어 비용 때문에 아웃소싱과 업무 자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0년간 미국 각 주의 중소기업 창업률도 하락했다. 미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에 비해 재정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생계기준 개선 전망은 어둡다.
전국 독립기업연맹(NFIB)이 산출하는 중소기업 경기낙관지수는 지난해 넷 플러스 12에서 올해 1월에는 제로, 2월에는 마이너스 1로 떨어졌다. 풀어 말하면 중소기업 경영주들의 경기전망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난 3개월 간 소비자신뢰지수는 뒷걸음질 쳤고 소매판매 역시 연속 하락했다. 1987년의 경우를 제외하면 이들 지수들의 3개월 연속 하락은 경기침체를 불러온 신호였다.
▲ 성인 60% “미국 쇠퇴기”
지난해 11월 실시된 전국 규모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80%는 미국 경제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고 성인 71%는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으며 60%는 미국이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를 보였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 역시 미국 경제에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소지한 커플이 대학 졸업장을 취득할 경우 연간 소득을 5만8,000달러가량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대졸 학력을 지닌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임금도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대학원 이상의 고학력자들만이 약간의 임금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패스트푸드 업소 종업원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운동을 정치권이 거들어주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퓨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했고 75%는 기간산업 시설에 대한 지출 인상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또한 80%는 대학 문호를 확대하고 학비 융자금 상환에 있어서도 더욱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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