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집이야, 쓰레기장이야?
▶ 온갖 폐품 쌓고 또 쌓고… 악취·곰팡이·화재위험까지 이웃 민원 빗발, 지역마다 강제퇴거 위한 대책반 운영
집안에 물건을 쌓아두고 치우지 않는 저장강박증이 지난달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에 장애(disorder)로 공식 등재됐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3~5%는 저장강박 환자다.
■ 미국인 3~5%가 ‘저장강박증’환자
폐품과 잡동사니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사는 것은 분명히 병이다. 지난달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에 장애(disorder)로 공식 등재됐으나 그저 꼴사나운 기벽이 아니라 치료를 필요로 하는 명실상부한 병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3~5%는 호딩(hoarding) 환자다. 호딩의 원 뜻은 물건을‘싹쓸이’하는 매점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나 의학적인 용어로는 집안에 물건을 쌓아두고 치우지 않는 저장 강박증을 지칭한다. 단순히 물건을 여기 저기 지저분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로 집안을 빼곡하게 채우는 습벽이 호딩이다.
호딩이 병적인 수준에 이르면 잠잘 공간마저 ‘쓰레기’가 차지하게 된다. 물론 다른 생활공간도 물건더미에 덮여 사라진다.
주방은 어디에 붙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식탁과 오븐 위에도 온갖 종류의 무용지물로 가득 찬 박스기 높다랗게 놓여 있다. 식사를 할 곳도 없고, 조리를 할 수도 없다.
호더(hoarder)라고 불리는 환자들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버리려 들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버리는 능력’이 없다.
이미 몇 년이 지난 샤핑 영수증도 못 버린다.
게다가 거리에 놓인 폐품까지 닥치는 대로 집어와 방안에 쌓아둔다. 바퀴가 떨어져 나간 자전거, 고장 난 TV와 이 빠진 접시들, 언제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도 모르는 산더미 같은 옷들, 철지난 잡지와 쓰레기에 몇 년 묵은 신문철로 집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변해 버린다.
쌓아만 두고 전혀 치우지 않으니 곰팡이가 슬고, 썩을 만한 것은 죄다 썩는다. 집이 쓰레기통이나 진배 없으니 온갖 해충과 쥐 떼가 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쥐 떼의 오줌과 배설물이 곰팡이 냄새와 뒤엉켜 악취를 뿜어낸다.
그래도 거주인은 전혀 정리를 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설사 안다 해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산더미 같은 물건을 이리 저리 치워 두어야 필요한 것에 접근할 수 있는데 도통 옮길 틈이 없다.
각종 고지서도 폐품더미에 묻혀 ‘실종’된다. 분명 버리진 않았으나 고지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니 납부기한을 넘기기 일쑤다.
그러다보면 상습적인 체납으로 어느 결엔가 전기와 수도가 끊어지고, 개스 공급도 중단된다.
결국 밤에 전등을 켜는 대신 양초를 사용하고, 밥을 짓기 위해 버너를 이용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호더에게는 늘 화재위험이 뒤따른다.
몇 년 지나 누렇게 변색된 바싹 마른 신문과 책 더미, 옷가지들은 안성맞춤의 땔감이다. 불티 하나로 삽시간에 집 전체가 용광로로 돌변할 수 있다.
2011년 10월 캘리포니아주 다너포인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은 부부는 둘 다 저장강박증 환자였다. 지역 소방국은 화재위험을 들어 이들에게 수년간 ‘집안 정리’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지난해 10월 코네티컷주 올드 그린위치 소재 단독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관들은 거주인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집안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머리 높이로 빼곡하게 쌓인 잡동사니들로 인해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안에 있던 노인도 불길에 휩싸인 물건들 사이로 빠져나오려다 전신화상을 입었다.
11월에는 시카고에서 한 명의 남성이 중화상을 입었다. 방안에 있던 다섯 마리의 개는 숯덩이로 변했고 애꿎게도 이웃집이 전소됐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던 시카고 소방국장은 취재진에게 “남성 거주자는 호더였다”고 밝히고 집안에 가득 쌓인 물건들 때문에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저장강박증 환자들로 인한 화재위험은 미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200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주 멜버른에서 발생한 예방 가능한 주택가 화재 가운데 24%가 호더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저장강박증 환자 이웃은 늘 불안하다. 내 집 단속을 제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이웃에서 불이 나면 말짱 황이다. 화재 발생 위험만이 아니다. 벽을 따라 이동하는 해충과 공기를 타고 넘어오는 악취를 막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나쁜 이웃을 영구 퇴거시키는 것뿐이다. 경찰과 소방국에 이웃집 저장강박증 환자를 고발하는 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현재 캘리포니아 샌호제에서 캔사스주의 위치타, 메인주의 포틀랜드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의 85개 이상의 커뮤니티가 저장강박증 환자들로 인한 재앙을 예방하고 이들의 생활방식을 반전시키기 위한 특별 대책팀을 운영하고 있다.
신고를 접수한 특별 대책팀은 문제의 아파트나 주택을 방문해 현장 실사작업을 벌인다.
이들은 표준 체크리스트에 의거해 집안 상황을 등급화 한다. 이 가운데 1에서 3까지의 등급은 “외부 개입을 필요로 하지만 강제퇴거를 필요로 하는 수준은 아니다.”저장강박증을 공권력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환자들은 사생활 보호권을 앞세워 외부 개입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들의 법적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비영리 단체들도 여럿 생겨났기 때문에 경찰국과 소방국이 함께 꾸려가는 특별 대책팀이 함부로 개입하기도 힘들다.
각 지방자치 단체마다 공중위생과 건축코드에 관한 규례를 제정해 두었지만 이를 집행하는 것은 임의적이고 선별적이다. 일관된 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평성의 시비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일부 적대적인 저장강박 환자들은 단속 팀의 접근을 막이 위해 사나운 개를 풀어놓거나 최상위법인 헌법의 사생활 보호권을 앞세워 단속에 맹렬히 저항한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관과 소방관들은 강권 개입을 할 것이지 여부를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한다.
특별 대책팀은 회초리와 당근을 병행하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협조적인 호더에게는 폐기물 정리를 특별 지원하고 화재경보기를 새로 설치해 주기도 한다.
무작정 법집행 절차에 돌입하는 대신 화재와 질병 위험, 이웃에 끼치는 폐해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집안 정리를 간곡하게 권유한다.
저장강박을 일으키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차피 빈주먹으로 온 세상, 빈주먹으로 가는 것이 순리일 터인데,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사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를 일이다. 하긴 그래서 병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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