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1일. 그러니까 열흘 후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가지 기록을 보태게 된다. 1차 세계대전보다 더 오랜 장기전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3일이면 끝낼 수 있다고 했던가. 그 우크라이나 전쟁이 햇수로 5년째, 정확히 밝히면 2026년 6월 1일 현재 1569일째 이어지고 있다.
‘장기 소모전 양상에,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지난 2년여 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일반적 평가였다. 이 내러티브에는 일종의 암묵의 컨센서스 비슷한 것이 함축돼 있었다. 장기 소모전은 러시아에게 유리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궁극적 승자는 푸틴이 될 것이라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가 제거됐다. 올 연초의 일이다. 그리고 두 달이 못돼 이란 회교신정체제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도 참살됐다. 그러면서 본격화 된 게 이란 전쟁으로 세계의 이목은 온통 중동지역으로 쏠렸다.
그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선을 둘러싸고 일련의 군사·정치·전략적 사태진전이 잇달았다. 그 경과들을 종합, 지오폴리티컬 모니터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모든 사태진전은 종전과 달라진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전쟁의 궤적이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같은 변화의 흐름이 먼저 뚜렷이 감지되고 있는 곳은 전선(戰線)이다. 봄과 함께 먼저 대공세를 펼친 건 러시아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막대한 사상자만 냈다. 4월 들어서는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2년 만에 최대로 실지(失地)를 탈환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달라진 전쟁의 흐름은 러시아군의 사상자 숫자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러시아군 전사자는 2022년 개전 이후 근 50만에 이르고 올해 들어 러시아군 사상자수는 월 평균 3만5000명 수준으로 보충병 수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게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다.
전쟁에서 전사자와 전상자 비율은 전상자 쪽이 높은 것이 통례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상황은 정반대다. 러시아군의 전사자 수는 부상자 수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왜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나. 우크라이나의 ‘드론혁명’에서 그 답이 찾아진다.
병력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중·단거리 드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드론 공격은 치명율이 높다. 그리고 병사들을 사냥하듯 추적한다, 때문에 부상자 후송은 거의 불가능하다.
드론 공격은 전선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꾸준한 연구개발에, 미국의 기술지원이 더해져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은 연 100만대가 넘는다. 거기에다가 자체 탄도미사일개발에도 성공,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국경 너머 러시아 내륙 깊숙이 1800km까지 공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드론이 ‘게임 체인저’로 등장하면서 전선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주요 군사기지는 물론, 주요 석유 정유소 등 에너지 인프라까지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다가 대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지원 등 유럽연합(EU)의 정책에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 온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의 퇴진과 함께 EU의 재정지원(900억 유로 규모)과 군사지원(600억 유로)이 원활히 이루어지면서 상황은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달라지고 있는 전쟁의 흐름은 해마다 5월 9일이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서도 포착됐다. 이 행사 개최를 앞두고 푸틴은 트럼프에게 전화를 했다. 우크라이나와 3일간의 휴전을 보장해달라는 일종의 구걸을 해온 것.
이 행동 자체가 그렇다. 파워가 아닌 허약함을 투사했다고 할까. 그렇게 해서 전승절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그 광경은 예년과 사뭇 달랐다. 위대한 러시아의 파워를 과시하는 행사다. 그런데 행사 관람석의 초청 인사도, 모스크바를 찾은 세계 정상들의 수도 얼마 안됐다. 전차도, 로켓 발사대도 없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두려워서다.
‘러시아인들은 점차 푸틴을 신뢰하기를 중단하고 있다.’ 스펙테이터지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의 드론과 탄두 미사일이 하루가 멀다고 날라든다. 러시아 전역이 불바다가 되고 있는 것. 그 정황에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은 경제다. 급기야 러시아의 GDP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도 압력이 높아가고 있다.
과거 90%를 크게 상회하던 푸틴 지지율이 50%선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기득권층에서도 균열이 일고 있다. 1300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친 크렘린성향의 인플루언서가 공공연히 현 시스템을 비난하고 나선다. 굴지의 방산 업체 최고 경영진이 군의 부패상을 공격한다. 퇴역 장성들도 가세해 목소리를 낸다. 전쟁 피로증세가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증좌다.
‘강한 러시아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제 그만, 죽어가는 러시아를 두려워해야 한다.’ 리얼 클리어 디펜스의 진단이다.
‘상처 잎은 곰은 위험하다. 상처를 입은 데 더해 코너에 몰려 더 이상의 출구가 없다, 그런 곰은 훨씬 더 위험하다.’ 5년째 이어진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오늘날의 푸틴 러시아를 빗댄 표현으로 이제는 강한 러시아가 아닌 약한 러시아의 자포자기식 ‘막가파 행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푸틴의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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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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