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잘 빼입고 여객기 승무원들에게 친절하게 구는 승객들이 좌석 업그레이드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카페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커피를 주문한다. 웨이트리스는 이들의 주문을 메모지에 꼼꼼하게 받아 적는다. 손님들의 주문은 제각각이다. 이윽고 주문지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간 이 아가씨는 복잡한 주문사항을 간단하게 압축해 전달한다. “커피 다섯 잔이요.” 스타벅스가 나오기 한참 전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다.
일반 커피 마시고 잠 안드는 승객은“ 성가셔”
음료는? 물으면, 뭐가 있죠? 되물어도“짜증”
여객기에서 제공하는 음료수 가운데에는 커피도 포함된다. 이코노미석 승객에게는 에스프레소나 라테, 캬라멜 마카아토 등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지만 카페인이 없는 디캡과 레귤러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는 있다.
하지만 레귤러를 원하는 승객에게 승무원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커피는 대부분의 경우 디캡이다. 분명 커피포트는 검은색 손잡이가 달린 레귤러용인데 내용물은 디캡이다. 안과 밖이 다른‘ 표리부동’ 커피인 셈이다.
물론 승객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레귤러 커피를 제공하라는 항공사의 공식 지침 따위는 없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고객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가급적이면 일찌감치 수면에 빠져들기를 원한다. 레귤러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진 승객은“ 성가시다” .
기내 승무원들이 털어놓은 커피 ‘괴담’은 프랑스 시골 카페 웨이트리스의 깜직한 주문 처리처럼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객기 기내 승무원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직업이다. 수천피트 상공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업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다. 우스꽝스런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찔한 느낌을 주는 일화들도 적지 않다.
승객들의 탑승이 끝나고 이륙준비가 시작되면 여객기 승무원들은 기내 비상구 슬라이드를 일일이 점검한다. 비상착륙 때 탈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확인하는 절차다. 규정에 따라 승무원들은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서로 상대방의 맞은 쪽 비상구 점검과정을 체크한다.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절차를 밟지만 이들도 사람이다 보니 때때로 실수를 한다.
비상구 슬라이드를 작동준비 완료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깜빡 실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여객기가 불시착할 경우 비상 탈출구의 슬라이드가 작동되지 않는다. 실수가 발견되면 담당 승무원은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기내 승무원들은 근무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는다. 비행 스케줄이 일정치 않으니 시간제로 임금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언제부터 근무가 시작되느냐가 이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전에는 탑승준비를 위해 승무원들이 공항에 나오는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이 주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승객 탑승구가 닫히는 시간으로 1차 변경을 거친 뒤 브레이크 제동이 풀리는 시점으로 기준이 옮겨갔다.
짠돌이 항공사들은 비행기 바퀴가 지상을 떠나는 순간부터 승무원들의 임금시간을 계산한다.
항공기 이륙이 지연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승무원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실제로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까지 몇 시간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인건비가 날아가는 셈이다.
이걸 막기 위해‘ 휠 업’ 즉 비행기 바퀴가 지
상을 떠나는 시점을 승무원 근무시간의 출발선
으로 간주한다.
탑승이 시작되면 승무원들은 탑승구에 서서 승객들을 미소로 맞아들인다. 이들이 지어 보이는 미소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어야 한다. 승무원들은 임금에 가산되지 않는‘ 노력봉사’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륙이 일정시간 이상 지연되면 항공사들은 승무원들에게 오버타임, 즉 시간 외 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래도 출발이 지연될 것 같다 싶으면 승무원들은 오버타임이 가산되기 시작할 때까지 슬슬 일을 늦춘다. 일종의 태업이다. 오버타임은 시간당 기본임금의 두 배이다.‘ 휠 업’ 기준 근무시간으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승무원들에게는 손실 벌충의 기회인 셈이다.
일단 탑승구가 닫히면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다. 물론 업그레이드를 자주 해주지는 않는다.
일부 항공사들은 왜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는지 설명하는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다.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의 식사메뉴가 이코노미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잦은 업그레이드는 돈이 새는 것과 같다.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이 만석이 될 때에는 업그레이들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일단 업그레이드의 기회가 생겼을 경우 행운의 주인공을 가리는 기준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우선 입성이 꾀죄죄한 승객은 1차 고려대상에서 무조건 제외된다. 반면 승무원들에게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인상을 주거나 옷차림이 근사하면 낙점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임신부는 당연히 1순위다. 키가 크고 잘 생겼거나 승무원의 친구면 0순위다.
승무원들은 랩탑이나 잡지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승객을 싫어한다. 이유는 뻔하다. 붐비는 화장실에 신문을 들고 들어가는 승객은 ‘장기 체류자’다.
장거리 여행이 아닌데도 승무원들이 바쁘게 오가는 비좁은 통로에 나와 한사코 무릎 굽혀 펴기를 해대는 승객 역시 미움을 받는다.
이런 승객들이 많으면 승무원들은 조종실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난기류를 한참 전에 통과한 것 같은데 안전벨트 착용 신호가 꺼지지 않는다면 이는 필시 승무원이 긴급 타전한 SOS에 대한 선장의 도움수다.
승무원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또 있다. 음료수를 제공할 때“ 무얼 드시겠느냐”고 물으면 즉석에서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꼭 “뭐가 있지요?”라고 되묻는 승객들이 적지 않다.
LA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한 승무원들은 그럴 때마다“ 다른 건 다 있는데 시간은 없습니다”라고 쏘아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 삼매경에 빠져든 일부 승객들은 무얼 마시겠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승무원의 입장에서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두세 번 반복해 물은 뒤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하면 콜라를 주고 가버린다.
밤비행기를 타면 기내식 제공시간이 꽤 오랜 시간 늦춰지곤 한다. 낮 비행기를 탔을 때에는 이륙 후 조금 지나면 식사가 나오는데, 밤비행기는 그렇지 않다. 승무원들이 되도록 많은 승객들이 잠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시중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만큼 홀가분한 느낌도 없다. 기내 서비스는 중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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