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전후 남북통일위한 대남 정치공작 활발”
한국 등 유엔 안보리 5개국 대사들이 18일 유엔본부에서 시리아 인권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개리 퀸랜 호주 대사, 마크 라이얼 그랜트 영국대사, 제라드 아로 프랑스 대사, 실비 루카스 룩셈부르크 대사, 김숙 한국 대사 <사진=유엔>
"1960년 4.19를 전후, 북한 주도의 남북통일을 위한 대남 정치공작이 활발히 전개한 사실이 최근 공개된 구소련 비밀문서들에서 확인됐다.미국의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역사프로젝트는 16일 옛 소련의 평양 주재 대사였던 알렉산더 푸자노프가 1960년 3월~12월 작성, ‘1급기밀’(Top Secret)로 모스코바에 전송한 20건의 일지(Journal)를 공개했다.‘1960년 이승만 전복에 대한 북한 시각’(North Korean Perspectives on the Overthrow of Syngman Rhee, 1960)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4.19 전후 한국 정세에 대한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발언, 진단, 전망 등 내용이 담긴 푸자노프 대사의 일지들이 포함돼 있다.
조봉암 진보당 위원장
특히 일지들에는 북한이 ‘평화통일’(Peaceful Unification)을 내세운 북한노동당의 대남공작으로 한국 사회단체와 정치 당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깊게 관여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푸자노프 전 대사가 4월21일 작성, 구 소련 외무성 본부가 5월16일 전송 받은 일지에는 김 주석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따른 한국 정권의 후계구도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담겨있다.
푸자노프는 이 일지에서 “김일성은 이승만의 가능 후임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고 말했다”며 “이승만은 고령으로 업무를 전혀 볼 수가 없고 특히 최근 들어 자신의 권위를 크게 훼손시켰기 때문에 교체가 돼야 하는데 충분한 권한과 색채가 있는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푸자노프는 이어 김 주석이 이기붕 자유당 의장이자 새로 선출된 부통령은 인기가 없고, 장면 민주당 대표이자 전 총리는 가톨릭 신자로 적합하지가 않다고 평가했으며 당시 가장 유력한 인물로 장택상 반공투쟁위원장을 꼽았으나 친일 성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그를 신뢰할 수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푸자노프는 또 김 주석이 1960년 3월15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돌연 사망한 민주당 후보 조병옥을 언급했으며 “진보당 대표이자 권위가 있었던 조봉암은 서둘러서 평화통일 정책을 발표함에 따라 이승만의 지시로 체포된 후 지난 해 처형됐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푸자노프는 김 주석이 조봉암을 언급하면서 “우리(북한)도 여기에 있어서는 실수를 했다: 조봉암을 자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며 괄호를 달아 그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써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보성향 정치당
푸자노프는 5월2일자 일지에서 구 소련 주 평양 대사관 만찬에 초청을 받고 참석한 김 주석이 ‘남한 상황’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상세히 보고했다.그는 일지에서 김 주석이 “(남한) 국민들이 대규모 대중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위력을 느꼈다. 그들은 이제 과거에 금지됐던 사회단체와 정치 당 활동을 다시 계속하기 시작했다”며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남한에 더 많은 진보 성향 당들이 있을수록 북한노동당이 남한 대중을 상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쉬워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6월11일자 일지에는 김 주석이 남한에서 노동자 문제들, 시위와 데모가 계속되고 있음과 진보 성향의 당이 여럿 생겨난 사실을 상기시킨 뒤 이들 당 중 일부가 반공 기치를 내세운 것에 대해 “이들 당이 해체되지 않게 하기 위한 우리의 지시에 따라 그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결과적으로 (이들 당에서) 반공 기치를 없애는 것은 아주 쉬운 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북대표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 of Representatives of the North and South)를 발족시키는 기초를 마련하고 있다는데 있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북한 연관 남한 정치 당
이외에도 7월25일자 일지는 “(남한) 국회의원 선거가 7월29일로 예정돼 있다. 김일성의 견해로는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연관된, 또는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새롭게 구성된 당원들의 의원 당선 가능성을 최고 35명까지로 보고 있다”며 “남한에서 새롭게 구성된 가장 큰 당들은 사회대중당과 사회당으로 이들 모두 북한노동당과 관계가 있거나 어느 정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기록했다.
푸자노프는 이 일지에서 “김일성은 또 남한 관련 문제들에 대한 신속한 해결을 위해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남한문제중앙국’(CBSKI)을 설립했다고 말했다”며 “연락부, 문화부, 대외관계부 등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들 3명이 위원들로 있고 그 중 대외관계부의 목적은 주로 일본을 위주로 여러 국가들을 통해 남한과의 관계를 설립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푸자노프는 앞서 4월21일자 보고서에서 김 주석이 북에서 남파 할 ‘정치일꾼’(Political Cadre) 양성을 목적으로 남한 출신 인민군 10만명 가운데 일부를 선발해 교육시킬 ‘공산고등교육소’(CHEI)를 만들었다고 말했다며 그가 2~3년 이내에 “남한 민중속에서 정치 활동을 하게끔 보낼 충분한 숫자를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역사프로젝트는 공산권의 북한 관련 비밀해제 문건들을 발굴해 영어로 변역, 소개하는 ‘북한국제문건연구사업’(NKIDP)의 하나로 이번 보고서를 내놓았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 UN소식
시리아 인권문제 ICC회부 촉구
한국 등 5개국 공동성명
<유엔본부=신용일 기자> 한국, 영국, 프랑스, 호주, 룩셈부르크 유엔대사들은 18일 유엔본부에서 공동성명을 내고 유엔 안보리가 시리아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5개국 유엔대사들은 이날 시리아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안보리가 가진 비공개 회의에 참석한 뒤 유엔 출입기자단에게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보고받은 인권위반과 반인도주의 행위 규모가 끔찍하고도 섬뜩하다”며 ICC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동성명은 “유엔총회와 유엔인권위원회가 여러 차례에 걸쳐 시리아에서 계속되는 폭력사태를 규탄하고 시리아 정권이 즉시 모든 인권위반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상기시키며 “극적인 사망자수에도 불구하고 안보리가 침묵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5개국)는 절대적인 책임의 필요성과 시리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행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제라드 아로 프랑스 대사가 불어로, 마크 라이알 그랜트 영국 대사가 영어로 각각 낭독한 5개국 공동성명은 또 “(시리아에서의) 인권위반과 유린에 대한 유엔 조사위원회의 강도 높은 조사도 적극 지지 한다”며 “훗날 법률적 처벌을 위해서도 이러한 만행을 기록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안보리 비공개 회의에서 22개월 전 평화적 시위로 시리아 사태가 시작된 이후 민간인 6만명이 살해됐다고 보고하며 안보리가 ICC에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스위스 등 58개국이 안보리에 “민간인에 대한 공격과 참극이 일반적인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시리아 상황은 더욱 절박해지기만 했다”며 “ICC에 요청해 전쟁범죄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동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 그랜트 대사는 18일 공동성명 발표 뒤 질의응답 순서에서 “안보리 내에서 최소한 1개국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혀 실제로 시리아 문제가 조만간 ICC에 회부되기는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안보리가 추진해온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결의들에 대해 시리아 정권교체에 찬성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시리아 인권 문제에 대한 ICC의 조사는 시리아가 ICC 회원국이 아닌 관계로 유엔 안보리의 회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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