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나이가 없다고 설파한 것은 파스칼이고, 사랑을 가리켜 분별력없는 광기라고 한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랑은 사회적 그릇이나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는 사랑을 이같이 묘사하고 69세 시인과 17세 소녀 사이의 로맨스를 통해 인간 심상(心狀)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나이 차이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이야기, 때때로 소설보다 더 황당하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현실에서 등장한다. 그것도 신뢰ㆍ존경ㆍ책임으로 엮어진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아이다호 대학의 심리학 교수(31세)가 연인이었던 대학원생 제자(22세)를 권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 몬태나 주립대 음악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47세)가 학업과 직장알선 조언을 빌미삼아 학부 학생(19세)과 사귀기 시작하자 대학이 중재에 나선 사건, 콜로라도 주립대 볼더 캠퍼스에서 대학원 학생과 연인관계라는 것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교수가 해임된 사건, 그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미술대학,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미주리 주립대에서 교수와 학생간의 애정행각이 캠퍼스를 후끈 달구고 있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일어난 애정행각에 관한 규제는 대학마다 다르다. “로맨스와 섹스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현명한 짓은 아니다”라는 아이다호 대학, “교수가 직접 가르치거나 관리하는 학생들과 로맨스나 성관계를 가져선 안된다”라는 아이오아 주립대. “그런 관계를 막지는 않겠지만 상사에게 보고는 해라”는 미시간 주립대,“교수와 학생간의 성관계 금지령”을 내린 예일대, “제로 관용정책(Zero Tolerance)”을 불사하는 UC계열 대학 등 각양각색이다.
<호색(好色) 교수>를 저술한 신시내티 대학 영어교수 지첵은 모든 대학이 정책적으로 교수와 학생간의 로맨스를 전면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점을 볼모로 잡고 장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진 교수 앞에서 학생은 바람 앞의 등잔불 같기에, 진정한 의미의 ‘합의로 이뤄진 로맨스’가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그런 파워 불균형은 모든 인간관계에 존재한다. 성격ㆍ건강ㆍ집안환경 같은 조건으로 연인 사이를 저울질하면 한쪽이 기울게 마련인 것처럼, 칼자루를 쥔 자가 교수만은 아니다. 만일 외로운 중년 ‘돌싱’(돌아온 싱글) 교수 앞에 미모의 여학생이 나타났다면 누가 더 큰 파워를 가졌을까. 또한 제자와의 애정관계를 상부에 보고하게끔 교수에게 의무화시킨다 하더라도, 그 보고를 받은 대학 당국이 “우리 대학 교수가 당신의 딸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학생 부모에게 통보할까. 나아가 아이 둘을 키우고 나서 캠퍼스에 돌아와 학업을 다시 시작한 30대 후반 여성과 30대 중반 새내기 교수 사이에 피어나는 로맨스도 막아야 할까. 25세 대학원생 조교와 22세 학부 졸업반 학생과의 끈끈한 관계는 어떻게 처리할까.
로맨스의 시작ㆍ성장ㆍ승화 과정에는 나이ㆍ인종ㆍ종교ㆍ지역 등 그 어떤 장애물도 넘으려는 악착성이 있다. 그런데 69세 시인의 노트에서 발견된 것처럼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그런 것에 더 열정적이다.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믿는 대상을 찾는 종교의 자유 혹은 탐구 대상을 설정하는 학문의 자유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권리다. 물론 자유를 누리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요컨대 “너를 만나고 비로소 나는 나를 알았다”라는 고백이 터지는데 무슨 수로 막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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