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컷 튀지않는 은은한 멋 ‘상류계 코드’
1930년대 구미지역에서 복식문화가 시작되고 30년후인 60년대에 서울에 복식 개화기가 펼쳐진 그 시기에 중심에 섰던 박치우씨. 그는 멋쟁이 한국 남성은 모두 명동의 GQ양복점으로 몰려들게 하고 한국최초 남성복 패션쇼를 인기가수 유주룡을 비롯 연예인들을 모델로 화려하게 개최하여 유행을 선도한 바 있다. 미국에 이주 후 맨하탄 파크애비뉴에 오픈한 영국식 전통복전문점 Cheo는 현재 멋을 아는 세계 각국의 부호들을 단골로 갖고 있다.“중요함이란 마음의 부(富)함이며 그 외면이 남성(男性(남성) 스타일이다”는 의상철학을 지닌 박치우 복식전문가가 직접 쓰는 맨스 패션(Men’s Fashion)을 연재한다.
박치우씨 약력
1962년~1968년 서울명동 남성복전문점 GQ(Gentlemen’s Quarter)
1965년 제1회 남성복패션쇼, 반도호텔
1967년 제2회 남성복패션쇼, 조선호텔
1972~1981 피에르 가르댕 Intercontinental Co 근무
1982년~현재 영국식전통복전문점 Cheo Bespoke(Savil Row Tradition)오픈 성업중.
패션은 우리의 의생활을 신선하게 영위 할 수 있게 하는 신진대사로 시대가 변하는 대로 패션도 변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는 빠른 시대라고 해서 너무 앞서가는 진정한 패션의 의미가 없는 단지 기존 관념을 떠나서 나온 다양하나 복잡한 것들이 너무 많이 나와 실제 우리 사회에서 바라는 바른 옷차림이 무엇인지를 혼돈케 하고있다.
남성 패션은 여성 패션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에 대해 분명히 알아두는 것이 바른 옷차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남성 패션의 진정한 의미는 남성 복식 선진국 영국 복식사에 비춰진다. 18세기 이전에 말(馬)에 의존 했을 때 부리치(승마바지)를 입다가 모터 카가 나오면서 트라우서를 입게 되고 산업 혁명과 더불어 사람들이 교외 생활을 즐기면서 많은 스포츠 웨어가 고안되고 따라서 라운지 수트, 그리고 포멀 웨어가 고안되고 이에 따른 복식매너가 셋업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동양에서도 신사복이라는 이름으로 아낌없이 받아 드렸다. 이와 같이 패션은 시대가 변하면서 필요치 않은 것은 없어지고 필요에 의해 의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어떤 새로운 옷차림이 요구되는 것이 패션 문화이었다. 특히 남성패션은 현대복장의 기원이 되는 30년대 이후 반세기를 넘게 지나오면서도 길이나 폭이 다소 변하기는 했어도 러펠이나 포켓은 항상 있어야할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에 대해 남성복식 전문가들은 30년대에 영국에서 신사다운 옷차림으로서 시각적이나 매너는 더이상 가감할 나위없는 스타일이 크리에잇 되어진 타임레스 패션이라고 까지 말한다.
복식사에 나타난 옛 패션은 아리스토크랏(Aristocrat)으로부터 입혀졌다. 물론 그들의 사교복이었다. 18세기말 댄디 맨으로 알려진 비유 부럼멜은 런던 사교계의 초대에 첫번째로 그의 이름이 올려질 만큼 유명한 사교가인데 그의 옷차림은 지금도 웰 드레스드맨들로부터 화제가 된다. 그러나 그의 드레스 스타일은 단정해 보이는 것 외에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로 부터 그에게 끌리었을까, 그가 입은 옷차림은 마스큐린 드레스(Masculine dress)였다. 우리말로 사내다운 옷차림으로 직역 되지만 그 뜻은 신사로서 매너를 갖춘 사람의 내면에서 나와 풍기는 차림이었다.
우리사회 정서에서도 의리와 용감 그리고 예의를 갖춘 사람의 대명사 사나이처럼, 마스큐린 드레스를 입던 그 시대 사교계의 옷차림은 남보다 특별히 패셔너블하거나 트렌디한 옷을 입어서 튀어 보이는 차림이 아니었다. 색깔이나 컷이 프래쉬 하지 않는 은은한 멋의 옷차림을 하여야 하는 것이 상류 사교계의 코드였다. 이것은 옛 18세기 이야기만은 아니다. 남성복의 성지로 일컫는 런던 사빌 로의 테일러들은 200년의 역사를 갖으며 마스큐린 드레스 룩 뉴앙스가 풍기는 맞춤 양복으로 전 세계의 고객을 갖고 아직도 성업 중이다. 그들은 이제 잘 이해하기 어려운 마스큐린 드레스란 말보다 브리티쉬 룩이라고 하며 그리고 커스텀 메이드라고 하기보다 비스폭(Bespoke)이란 말을 사용하며 그들의 전통적인 인상을 강하게 느끼도록 하면서 전세계에 시장을 두고 특히 미국의 웰디어들 그리고 파이낸셜 엑스포트들이 큰 고객이다.
뉴욕에도 30년대 무렵에는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주로 하는 테일러들이 사빌로와 비교되는 맞춤복을 만들었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후에 이탈리안 들이 주로 하는 테일러들이 그 자리를 메웠지만 기질적으로 그들의 패션너블 스타일은 사빌 로의 마스큐린 드레스를 이해하는데 무리였다. 그래서 이탈리안 테일러란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일본 동경에서도 사빌로의 남성복 패션이 대단하게 일어나서 아예 남성복의 대명사는 새비로(Savile Row)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비스폭 수트의 멋은, 여성 패션처럼 조각을 부치거나 떼고 선을 이리저리 바꾸는 디자인이 아니라, 엘레간트한 기본을 바탕으로 누구나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또 각기 다른 내추럴 바디 라인을 따라 창출된다. 그러므로서 누구나 인디비주얼한 개성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테일러의 손을 많이 써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맞춤복은 지금은 너무 비싸져서 일반인들이 어포드 하기 어렵지만 기성화 된 것도 많이 있음으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 하는, 남성복이 어떠해야 된다는 기본을 이해하고 자기의 복식관을 확립하는 테이스트 레벨이 올려질 때 진정한 패션의 웰 드레스드 맨은 이미 되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것이 다시 나와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은 유행은 한시기를 지나면 지쳐서 다시 기존의 복식 원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트레디셔널한 남성복장은 어느 시대에도 그대로 있었으며 유행물로 인해 잠시 가려져 있었을 따름이다. 남성패션을 부과해서 더 요약하면 첫째 실루엣은 내추럴 바디라인을 따른 선이며, 둘째 디테일(Detail)은 트레디셔널 해야 하며, 셋째는 프래쉬(Flash)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마스큐린 드레스이다. <계속>
박치우씨가 주최한 제1회 남성복 패션쇼에서 독일계 혼혈가수 유주용이 모델이 되어 런웨이를 걸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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