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 9월 16일, 영국 플리머스를 떠난 메이플라워호에는 102명의 승객과 26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메이플라워호(Mayflower)는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향하는 ‘필그림 파더스’라 불리는 청교도 개척자들을 실어 나른 영국의 선박이었다.
이들은 당시 두 번째로 큰 이민단으로 기록된다. 항해 중 한 아이가 태어나 바다에서 얻은 생명이라는 뜻으로 ‘오시아누스(Oceanus)’라 이름 붙였고, 반대로 거센 파도 속에서 존 하우란드라는 승객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한 생명이 사라진 뒤, 이들은 66일간의 혹독한 항해 끝에 1620년 11월 9일 매사추세츠 케이프코드(Cape Cod)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원래 목적지는 허드슨강 하구, 오늘날 뉴욕 인근의 버지니아 식민지 북쪽 경계 지역이었다. 이미 1607년 제임스타운을 중심으로 첫 영국 이주민들이 정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항로 이탈과 지연으로 도착 시기는 이미 초겨울이었고, 결국 그들은 케이프코드에 머무르며 혹독한 월동을 준비해야 했다.
도착 후 11월 12일 첫 예배를 드렸고, 12월 22일에는 산모 앨러튼이 아이를 사산하는 비극도 겪었다. 결국 102명의 승객 중 53명만이 첫해 겨울을 넘기게 되었으며 선원도 절반가량이 사망했다.
하지만 인디언들에게서 옥수수 재배법을 배우며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불안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길을 열어나갔다. 초기에 분쟁도 있었지만 결국 상호 협력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옥수수·보리·밀을 심어 풍성한 가을 수확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도왔던 왐파노아그 부족 인디언 약 90명을 초청해 함께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다. 이는 위대한 미국 역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8년 반 전 뉴욕의 정든 곳을 떠나 메릴랜드에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버지니아 대학에 다니던 두 딸은 이제 안정된 직장을 갖고 결혼을 앞둔 적령기가 되었다. 미들스쿨에 다니던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에서 직장을 갖게 되었다. 요즘 문득문득 생각한다. 앞으로 결혼해 가정을 이루게 될 두 딸과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스스로 떠올려보는 대답은 늘 같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고맙습니다’,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라. 그러면 너희 가정과 일터가 행복해질 것이다.”
가정과 일터에서 감사가 흐르면 불행이 들어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감사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힘이다. 감사는 환난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절망해야 할 것 같은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발견하게 한다. 감사는 은혜의 도구이며,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마스터 키이다(Gratitude is a tool of grace, a master key that leads our lives to happiness).
감사하는 사람은 결국 행복해진다. 감사하는 사람은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한 곳임을 느끼게 된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통로요, 축복의 수단이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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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목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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