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한국인 모두에게 백팔번뇌 가득한 한 해였다고 정리한다. 불교 법화경(방편품)의 한 구절 안수정등(岸樹井藤)이 연상된다. “맹렬한 불길을 피하는데 미친 코끼리가 달려들어 엉겁결에 칡넝쿨에 매달려 밑을 내려다보니 웅덩이에 독룡(독사)이 아가리를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잡고 있는 칡넝쿨은 쥐들이 갉아먹는데 마침 매달려 있는 나무 구멍에 꿀통이 있어 정신없이 빨아먹는다."
인간의 갈등, 선과 악의 한계를 가르친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현 상황을 따갑게 질타하는 경구이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비극’, 세상이 듣기도 보기도 싫어 증오를 참다못해 난간에 서서 비명을 지르는 그림도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올 한 해 동안 국가를 대표하던 자, 부부가 작당하여 부패, 내란 분탕질을 치다가 파면 당했다. 뒤이어 정권을 장악한 자가 삼권분법의 불가촉 근간인 사법부를 목 조르고 있다. 이 자들은 민초들에게 돌아가야 할 7천800억원을 ‘항소 포기'라는 희대의 수작으로 한 입에 삼켜 버리고는 “없던 일로 하자"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저항의 싹을 뿌리 뽑자는 심산인지 공무원들 성분검사(휴대폰 내역, 수사)를 감행하겠단다. 대법원장을 법사위에 불러다 자리도 못 뜨게 온종일 앉혀놓고 삿대질, 호통을 치는 사건을 자행하기도 했다. 권력자의 외교업적은 그나마 빛바랜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가면극으로 전락해 버렸다.
국가에는 미친 코끼리가 달려들고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독사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자화자찬이나 하며 꿀통이나 핥고 있는 현 상황에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단연 나라를 다스리고 선도하고 있는 위정자들, 특히 지식층에게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주인은 당연히 일반 국민 대중이지만 이 주인을 극진히 섬기고 보호하며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지식인, 정치위정자들의 몫이 아닌가. 올 한해 점점 더 사회가 무질서, 혼돈으로 빠져드는 막장극을 목격하면서 지식층의 각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 운영의 요직을 점령하고 있는 지식층의 타락은 나라가 혼란, 불행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층이 저마다 부귀영화, 이기주의에 집착한다면 일반 서민대중에게 돌아오는 것은 박탈감, 불공평, 박해, 무질서 빈곤 같은 것 뿐일 것이다. 지식층이 자신들이 쌓아온 실력을 가지고 공공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사명을 의식화해야 한다.
우리 지식인들은 현재와 같은 흑역사 참상이 자신들의 몰염치 아니면 탐욕, 부귀영화만을 노린 이기주의 집착에서 비롯된 결과임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 지식층의 본분 탈선은 국가와 민족을 저버리고 보수니 진보니 제각각 아부, 보신으로 극한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나라가 오늘과 같은 아비규환이 돼버리지 않았나.
현시대를 비판하는 국민들은 “지식인은 많으나 지성인이 드물다"라고 개탄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사사롭게 영달만 추구하며 진지한 국가관이나 애국심 같은 고품격 철학이 없는 것 같다, 라는 지적이다. 물론 지식인들 모두가 정치일선에 참여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각계각층 자기 분야에서 리더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오피니언 리더들이 어떤 분야에서든 공평하고 건전한 민족의식을 지킨다면 국가 분위기가 지금처럼 암담한 처지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민들은 진정한 지성인들, 중도 양심세력의 등장을 매우 갈망하고 있다. 의식 없는 기회주의 지식인들의 간특한 행실을 저주하면서도 횃불을 치켜 올리는 지성이 나타나지 않아 절규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속절없이 시달려온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남북분단, 보수진보 좌우 극한 충돌에서 수많은 학자, 지식인들이 희생, 참사, 도륙 당했다. 그와 같은 토양에서 지식인들이 자지러져 단순 기능공으로 전락해 버린 내력을 충분히 공감한다.
예수의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 이 가르침 하나만 우리 남북 지성인들이 이기, 탐욕주의를 벗어나 성실히 실천해 왔더라면 분단의 비극은 벌써 막을 내렸을 것이다. 화택지자(火宅之子), 집에 큰 불난 걸 모르고 방안에서 한가하게 장난치는 아이들처럼 한심한 작태를 경계하라는 장자의 교훈에 통감하는 연말이다.
새해 표어,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다.
(571)326-6609
<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