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4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나침반, 종이, 인쇄술, 화약은 모두 중국이 만들었다. 나침반은 기원전 5세기 전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종이는 후한 시대 2세기초 채륜이란 관리가 만들었고 인쇄술은 7세기 당나라 때, 화약은 9세기 연금술사들이 불로장생약을 만들려다 우연히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경제는 11세기 송나라 때 세계 GDP의 ¼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중국 기술의 우위는 명나라 때까지 계속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405년부터 1433년까지 계속된 정호 제독의 원정이다.
거의 30년에 걸쳐 중국은 선단을 동남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보내 중국의 문물을 전달하고 조공 무역 체제를 발전시켰다. 첫번째 원정에 동원된 인원만도 배 수백척에2만8천명으로 고작 80여명이 3척의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콜럼버스 항해와 대조된다.
이 길로 계속 나갔으면 먼저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를 제패할 수도 있었을텐데 어느날 갑자기 중국 황제는 더 이상의 원정을 금지하고 스스로 배를 폐기해 버린다. 이 때부터 중국의 몰락은 시작됐다.
중국이 이처럼 자해 행위를 하고 있는 동안 서양인들은 이 발명품의 가치를 알아봤다. 17세기 영국 제임스 1세의 신하이자 철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랍 상인들로부터 이 물건들을 전해받고 인쇄와 화약, 나침반이 문학과 전쟁, 항해 등에 걸쳐 세계의 전모를 바꿔놨다며 어떤 제국도 이 발명품보다 인간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적었다.
칼 마르크스 또한 이 세가지 물건이 부르주아 시대를 예고하는 3대 발명이라면서 화약은 기사 계급을 궤멸시켰고 나침반은 세계 시장을 열고 식민지를 확립시켰으며 인쇄는 과학 부흥의 수단이 됐다고 썼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도 호모 하빌리스가 200만년전 처음 돌로 무기를 만들면서부터였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이고 농사 짓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문명과 역사가 시작됐고 인류의 부를 급속히 늘린 산업 혁명도 방직기와 증기 기관 등 발명품의 산물이다.
왜 산업 혁명이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당시 그곳 기술력이 가장 뛰어났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렇게 된 까닭은 거기가 정보의 교환이 가장 자유롭고 1624년 제정된 ‘특허법’을 통해 발명가의 권리를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이를 흉내내는 것을 허용한다면 기술 혁신에 매진할 사람은 없다.
기술 혁신과 국부 창출의 상관 관계에 대해 가장 깊이있게 연구한 학자의 한명이 조엘 모키어다. 그는 35년 전에 쓴 ‘부의 레버’(The Lever of Riches)라는 책에서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 혁명, 그 이후 등 시대별로 각종 기술과 발명품이 어떻게 사회를 변모시키고 부를 창출했는지 조목조목 기술해 놨다.
지난 주 노벨상 위원회는 모키어와 그의 연구를 뒷받침한 필립 아기옹, 피터 하위에게 올해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모키어는 왜 인류 번영 지수가 오랫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다 산업 혁명 후 급속히 치솟은 후 미국과 유럽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그는 산업 혁명의 원동력을 ‘처방적 지식’과 ‘명제적 지식’의 결합에서 찾는다. ‘처방적 지식’이란 물건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관한 지식으로 기술자와 장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말한다. ‘명제적 지식’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으로 과학적 지식이 이에 속한다. 이 둘이 결합될 때 폭발적인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호 개방과 자유로운 정보 교환이 필요한데 18, 19세기 영국은 이를 했고 15세기 중국은 하지 못했다.
그는 무엇이 지속적인 기술 혁신의 장애물인지도 파악했다. 새로운 기술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낡은 기술의 소멸을 의미한다. 슘페터가 주장한 ‘창조적 파괴’가 그것이다. 직물의 공장 생산이 가내 수공업자를 몰락하게 하고 포드의 모델 T가 마차 산업을 붕괴시킨 것이 그 예다. 이렇게 망한 노동자들은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과 함께 값싼 외국 물건 수입을 봉쇄하기 위한 관세 장벽을 원하기 마련이다.
모키어는 인공 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후손들이 우리만 못한 삶을 살 것이라는 우려를 기우라고 본다. 이는 산업 혁명이후 기술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주장이지만 한번도 사실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기술 혁신이 막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보호 무역주의의 득세로 국가간 장벽이 높아가고 있는 지금 모키어의 노벨상 수상은 국부의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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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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