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구금 풀자마자 압박
▶ 미 3,500억불 투자 주도권 원하는데
▶ 정부 “국익 반하는 협상 안해”
▶ 위성락 “조율할 부분 많다”
▶ 관세 원상복귀땐 수출 직격탄

하워드 러트닉(왼쪽) 미국 상무장관이 11일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며 “한국도 일본처럼 합의문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관세를 내야한다.”고 우리나라를 압박했다. [로이터]
한국과 미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두고 미국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것부터 금액·시기 등의 주도권을 전부 자신들이 쥐겠다는 게 미국 측 입장이다. 정부는 국익에 반하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최악의 경우 7월 말 타결된 관세 협상 전체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최종 관세 인하 시점이 수개월 이상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자동차 수출 시장을 두고 일본·독일 등과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번에도 막무가내식 협상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12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항상 막판에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수를 던지는 전략을 써왔다”며 “일본의 예상 밖 저자세 덕에 얻은 성과를 한국에서도 획득하기 위한 압박”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특정 사업을 지정하면 투자금을 45일 내에 조달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은 원금 회수 시까지는 양측이 절반씩 가져가되 원금 회수가 끝나는 시점부터 미국이 90%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는 이미 이 같은 내용의 협정문에는 서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미국에만 너무 유리한 구조인 데다 한국이 3,500억 달러를 전액 지분 투자(equity) 방식으로 조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관세에 유연함은 없다’고 밝힌 발언이 있었고 유의하고 있다”면서도 “자기 입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다양한 레토릭(미사여구)이 있는데 다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고 협상장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 실장은 이어 통상과 안보 이슈를 함께 협상하는 ‘패키지 딜’에 대해 “안보 협상은 처음엔 늦었지만 지금은 빠르고, 안보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관세는 지금은 다시 느려진 것”이라며 “일단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안보도 대충 됐으니 남은 건 관세 쪽”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이 이처럼 강대강으로 맞부딪히면서 업계에서는 미국이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원상복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은 인도·브라질 등과의 무역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기 위해 10~25%던 상호관세율을 50%로 끌어올린 바 있다.
실제 8월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12% 급락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독일 등과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 업계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영업을 해야 한다. 가령 미국에서 판매되는 쏘나타의 가격은 기존 2만6,900달러로 경쟁 차종인 도요타 캠리 등과 비교해 2,000달러가량 저렴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게 되면 이 같은 가격 차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공개적인 대치는 자제하고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협상장 밖에서 자꾸 대응하다 보면 전략만 노출된다”며 “관세 인하 지연에 따르는 경제적 파장을 고려해 정부가 절충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를 위해 일본식 협정문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3년 한국의 대미 해외직접투자(FDI)액이 278억 달러에 불과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3,500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 세계의 대미 FDI 금액이 2923억 달러에 불과한 상황이어서 2029년 1월까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만 8,500억 달러를 투자받겠다는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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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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