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 위기 야생벌과 꿀벌
▶ 살충제 사용으로 야생벌 감소
▶ 기온 상승에 서식지도 줄어들어
▶ 농약·응애·말벌에 고통 받는 꿀벌
▶ 따뜻한 겨울 탓 동면 않고 ‘과로사’
'사육밀도'일 34배, 미 80배 수준
설탕물 먹여 면역력·수명 떨어져
열악한 환경 속 양봉농가 많아
“양봉에 직불금 제도 고려했으면”“살충제와 소독약으로 공원과 아파트 단지 내 야생벌 서식지가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좀뒤영벌 등 그룹 생활을 하는 벌에게는 타격이 더 크고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20년 이상 야생벌을 조사해 온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농업 연구관은 사회적협동조합‘오늘의행동’이 마련한 야생벌 관찰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벌 연구모임인 벌볼일있는사람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남산공원 속 나무에 핀 꽃을 따라 야생벌 찾기에 나섰다. 양국수나무에서는 꼬마꽃벌, 알락꽃벌 등 꽃벌류가 관찰됐다.
가장 많은 종류의 벌을 만난 곳은 이맘때 가장 활짝 피는 만첩빈도리 나무였다. 이곳에서는 영화 ‘트랜스포머’ 속 캐릭터인 범블비의 모태가 된 노란색 털의 좀뒤영벌, 호박벌과 비슷하게 생겨 이름 붙여진 어리호박벌, 꿀벌의 천적인 말벌까지 관찰됐다.
이날 확인한 야생벌 종류는 12종, 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꿀벌은 1, 2마리 보는데 그쳤다. 이 연구관은 “최근 5년간 남산공원에 살충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결과 그나마 이 같은 야생벌이 살고 있는 것”이라며 “야생벌 수는 전보다 확실히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시민과학자인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 공동대표가 수컷 좀뒤영벌을 손으로 잡아 보여준 것이었다. 노란색 털과 통통한 배를 본 시민들은 “귀엽다”를 연발했다. 조 공동대표가 손으로 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컷에게는 침이 없기 때문. 그는 “벌의 침은 산란관이 변형된 것이기 때문에 수컷에겐 없다”며 “야생벌도 꿀벌도 인간이 위협하거나 자극하지 않으면 공격하는 일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특히 야생벌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그들의 소중함을 잘 알아야 지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야생벌은 밀원식물 감소와 살충제 사용 등으로 서식지가 줄어드는 데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위협도 커지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국립생태원·동남보건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2022년 발표한 ‘전국 야생 벌목 분포에 대한 기후요인 영향 연구’를 보면 기후변화로 한반도 기온 상승 시 야생벌 서식지가 북쪽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온 변화에 민감한 곤충은 빠르게 북상하지만, 식생은 그만큼 빠르게 이동할 수 없어 생태적 부조화가 일어나고 이는 벌 같은 월동 개체가 생존하지 못해 폐사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생벌은 화분 매개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드물다. 국내 연구 중에서는 지난해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발표한 ‘서천 마을숲 지역 야생벌의 다양성에 대한 정량적 연구’를 찾을 수 있었다. 공저자인 이상훈 국립생태원 습지연구팀장은 “국내 어떤 벌들이 어느 시기에 출현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없어 충남 서천군 마을 숲을 지정해 조사했다”며 “총 57종을 발견했고 개체 수는 4월에 가장 많았다”고 소개했다. 이 팀장은 “이는 화분매개자 출현 시기와 밀원식물 간 관계를 이해하는 기초 자료일 뿐이며 앞으로 더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꿀을 얻기 위해 기르는 꿀벌의 삶도 고단하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은 국내외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조사 결과 지난해 3월 월동 피해 봉군 수는 41만689군(1군=약 2만 마리)에 달했다. 2023년 94만4,404군보다 줄어든 수치지만 조사 대상 농가 수가 절반 수준임을 감안하면 피해 정도는 비슷하다. 봉군 피해율도 2022년 57%, 2023년 61%, 지난해 3월 52%에 달했다.
꿀벌 실종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기후 변화뿐 아니라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꿀벌 응애(진드기), 말벌 개체 수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 4종은 작물에서 꽃이 완전히 질 때까지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지만 벌이 접촉할 수 있는 농경지, 정원, 공원 등 야외에서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유럽연합(EU)이나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규제가 약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속 꿀벌이 과로하고 있다는 연구들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 본부가 최근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팀에 의뢰해 발간한 ‘기상 변동성과 침입 포식자의 확산을 통해 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폭염·폭우가 꿀벌 생존에 위협을 가한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조유리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집 안 온도나 습도가 높을 때 꿀벌은 날갯짓을 통해 이를 조절하는데 폭염·폭우가 잦아지면 과도한 날갯짓으로 수명이 단축된다”고 설명했다. 또 따뜻한 겨울 탓에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벌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되는 것도 과로사하게 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온 상승은 꿀벌의 포식자인 외래종 등검은말벌의 서식 가능 지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 말벌은 기존 남부 지역을 넘어 서울과 수도권, 강원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 중이며 이는 꿀벌의 번식과 수분 활동이 활발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의 시기와 겹쳐 피해를 집중시키고 있다.
WWF는 지난해 정 교수팀과 초미세먼지(PM2.5)와 같은 대기질 악화가 꿀벌의 비행 감각 저하 및 수분 활동 방해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더불어 국내 꿀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데는 봉군(벌떼) 밀도도 영향을 미친다.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양봉 사육밀도는 국토 면적(㎢)당 21.8봉군으로 일본의 34배, 미국의 80배에 달한다. 국내 봉군 수는 약 260만으로 적정 봉군 수인 약 140만~160만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농가 간 경쟁심화와 이상기후로 꽃 피는 기간이 짧아지면서 양봉업자들은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꿀벌이 만든 월동용 꿀을 모두 수확한 뒤, 대신 설탕물을 먹여 꿀을 생산·저장하도록 하는 사양벌꿀을 양산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 꿀을 식품으로 공식 인정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문제는 꿀 대신 설탕물을 먹은 꿀벌이 면역력과 수명 저하 등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는 “꿀벌에게 늦가을까지 월동식량을 만들도록 설탕물을 계속 공급할 경우 영양 부족과 과로로 꿀벌의 수명이 크게 단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도시양봉가인 박찬 어반비즈서울 이사는 “밀원식물은 부족하고 양봉농가는 많은 게 현실”이라며 “현재 꿀벌 복지는 전적으로 양봉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꿀벌도 수분 매개라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탄소흡수 등의 역할을 하는 논농사에 직불금을 지불하듯 양봉에도 직불금 제도 도입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식물 생식을 위해서는 수분을 매개하는 벌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먹이사슬 과 생물다양성 보존과도 직결된다”며 “야생벌뿐만 아니라 꿀벌도 이익을 우선하는 ‘가축’으로만 보지 말고 보호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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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동물복지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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