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뭘까. 엄마는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엎어지는 존재인가. 50년 전 나는 결단코 현모양처가 꿈이 아니었고, 시쳇말로 말괄량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만큼 완전히 개성 충만한 소녀였다. 무리지어 우르르가 아닌 홀로 씩씩한 스타일. 그런데 자식들에게는 늘상 전전긍긍 연연하고 매달리는게 내게도 낯설다. 더우기 나이가 들면서 부쩍 아이들에게 더 의존하는 모양새다.
아들이 집을 나갔다. 아버지랑 감정적인 대립을 하면서 날을 세우다가 엄마인 나랑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며 격하게 언성을 높이던 차였다. 대부분의 경우 거의 무조건적으로 아들 편이었던 나마저 이제 그럼 너의 인생을 살 때가 된 것 같다고, 감성이 제외된 다소 차가운 말투로 얘기하는 것에 아들은 짐을 싸서 나간 것이다. 그리곤 친구집에서 거의 한달 가량 머물며 빨래하러 가끔 들러 잠깐 얼굴만 비추며 지내더니 지난주 캐나다로 가겠다는 갑작스런 통보를 했다. 난 팔다리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놈. 엄마인 내가 그 동안 눈치보며 행여나 마음 상하는 일 없게끔 말도 조심하고 본인 원하는 음식 만들어 주고, 가끔 논쟁이 붙어도 아들 입장을 우선해서 맞춰주는 등 여간 애를 쓴게 아닌데 도대체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말이다. 갑자기 날아 들어온 돌에 맞은듯 난 엉엉 목놓아 울었다. 며칠간 거의 매일.
캐나다는 미국 내 도시가 아닌 남의 나라. 해서 떠나기 하루 전날인 어제 점심 무렵에 집으로 오라해서 평소 좋아하던 밥상을 차려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이른 시각에 비행을 떠나니 뭐라도 먹을 것을 챙겨보낼 요량으로 주먹밥과 오믈렛을 만들고, 과일도 컵에 담고, 컵라면, 스낵 등을 챙겼다. 공항에서는 시간에 쫒기듯 곧바로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보내고 돌아오면서, 서운함과 야속함으로 범벅된 감정을 다스리느라 울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고 나중엔 기운없이 큰 숨만 거푸 들이켜야했다.
성장한 아이들은 결국 제 인생을 살기 위해 부모 품을 떠나는게 맞다. 어린시절 재롱으로 부모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게 자식이 주는 효도라 생각하면 된다고 누가 그러더만, 막상 품안에서 떠나는 걸 경험하면서 겪는 이 상실감은 뭘까. 사실 평소에도 연락이 닿지 않으면 마음 졸이며 온갖 불평을 다 하다가 막상 연결돼 목소리라도 듣게되면 언제 그랬던가 싶게 살금거리며 고마워하고 얼굴빛 환해져서 좋아하는 모습이었으니 무에 더 말하랴. 다시 돌아올때 즈음이면 훨씬 성숙해진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있을테니 마음 잘 다스리라는 조언을 동생으로부터 듣는다. 결국 인생은 혼자 왔다가 다시 혼자로 남겨지는게 이치라면 받아들여야만 할게다. 나이들면서 점점 외로움이 불쑥불쑥 마구잡이로 찾아와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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