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캠퍼스의 첫 오피스 중 하나인 B42 건물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앞에는 커다란 공룡 모형이 있다. 흡사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공룡 모형은 사나운 이빨을 세운 채 구글러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할 때도, 야외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챗을 할 때도, 다른 캠퍼스로 가기 위해 자전거로 이동할 때조차 그렇다. 구글이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고 만들었다는 미래형 일터인 베이뷰 오피스는 많은 디자인 요소를 새롭게 가져왔지만 실내 한가운데 자리한 공룡 화석 모형만큼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유난한 공룡 사랑에는 ‘화석이 되지 말자’는 교훈을 새겨 망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게 구글러 사이에 정설로 꼽힌다.
메타(옛 페이스북)도 기업공개(IPO) 직전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먼로파크 사옥에 입주하면서 이 같은 교훈을 상징물로 남겼다. 메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좋아요’ 심벌이 있는 커다란 간판이 그 주인공이다. 입간판 뒷면에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라는 글자가 빛바랜 채 그대로 남겨져있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 강자로 꼽혔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오라클에 인수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앤디 벡톨샤임은 구글에 첫 투자를 한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 기업이 최근 화석이 될까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오픈AI가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내놓은 지 석 달 만에 업계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이 환호하면서 ‘열풍’을 만든 탓이다. 이 기간 동안 구글과 메타는 열풍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사실 구글과 메타는 AI 투자 규모와 연구 기간에서 비교적 신생인 오픈AI를 크게 압도한다. 특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트랜스포머 모델의 경우 구글이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챗GPT가 열풍을 일으키고 그제서야 구글은 ‘코드 레드’를 발령해 제품 상용화에 나섰다. 이후 구글이 공개한 AI 챗봇 ‘바드’는 시연 후 답변 오류로 여전히 제품을 테스트 중이다. 메타는 앞서 AI 챗봇 ‘블렌더봇’을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술력에서 앞서고도 이 기업들이 수세에 몰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용자의 진짜 페인포인트를 직시하지 않은 점이다. 구글은 20여 년 전 야후를 상대로 혁신적인 검색 엔진을 내놓았지만 압도적 강자가 된 상황에서는 굳이 제 살 깎아 먹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대의명분을 찾지 못해 어영부영했다. 메타는 메타버스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힘을 쏟다가 많은 이용자들의 니즈를 놓쳤다.
오픈AI가 대단한 기술력으로 제품을 만들었지만 이에 맞는 판을 깔아준 것은 한때 ‘화석’ 취급을 받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다. 모바일 시대에는 구글과 메타에 밀려 힘을 못 썼던 MS는 과거 PC 운영체제 강자 시절의 높았던 콧대를 낮추고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모두가 잊고 있던 검색 엔진 ‘빙’을 새로운 무대에 세웠다.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던 검색 엔진에 챗GPT를 과감히 도입했다. 그는 2008년 검색 엔진 ‘빙’ 출시를 준비하는 팀을 이끈 적이 있다. 검색 엔진의 후발 주자인 빙이 챗GPT를 도입하면서 판을 뒤집자 이제는 구글이 역으로 이를 뒤따라 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나델라 CEO는 자신의 저서 ‘히트 리프레시’에서 “사람들은 성공하고 나면 애초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습관을 망각해버린다”며 한때 MS를 키운 파트너십을 움직이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언급했다. 성공으로 이끈 강점을 망각하는 순간 그 기업이 주는 임팩트는 사라진다. 망해야만 화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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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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