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56시간. ‘유럽 슈퍼리그(ESL)’ 창설 발표부터 첫 탈퇴 팀이 나오기까지 고작 이틀하고도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 많은 구단끼리 모여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겠다는 탐욕스러운 계획은 ESL 주축인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빅6 구단의 도미노 이탈을 시작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애정하는 팀의 배신으로 뒤통수를 맞은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탈퇴해 ESL로 갈아타려던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첼시, 토트넘, 리버풀 등 EPL 6개 구단 모두가 20일(현지시간) 계획을 철회했다. 이틀 전 ESL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린 12개 구단 중 가장 부유한 EPL 구단들이 등을 돌리면서 ESL은 첫 발도 떼기 전에 좌초했다. “축구를 구하겠다”(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는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놓고선 꼴이 우습게 됐다. 아스널은 “실수했다”며 공식 사과했고, 대니얼 레비 토트넘 회장은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단들은 감독ㆍ선수ㆍ팬들의 극렬한 반대와 저항, 법적 조치까지 꺼내든 영국 정부의 강경 대응 등 예상을 뛰어넘는 전방위 압박에 크게 놀란 눈치다. 맨유 수비수 출신 해설자 게리 네빌은 “욕심의 결과물이자 끔찍한 범죄”라며 “가담 팀에 벌점을 물리고 랭킹 최하위로 강등시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첼시 팬 1,000여명은 이날 브라이튼과의 경기를 앞둔 홈구장 스탬포드브리지에서 “고(故) 첼시FC” “꺼져 슈퍼리그”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고, 유럽축구연맹은 월드컵 출장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SL은 축구에 극심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 경고했고, 올리버 다우든 문화장관은 “지배구조 개혁부터 경쟁법까지 모든 제재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돈 좀 만져 보려다가 더 큰 역풍을 맞게 된 구단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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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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