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CJ E&M
김하늘이 스크린에 돌아왔다. 한 때 멜로퀸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으로, 다시 호러퀸으로 불리던 그녀는 '여교사'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교사'(감독 김태용)는 비정규직 교사가 재단 이사장 딸이 정규직으로 들어오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사장 딸이 탐하는 발레하는 고교생에 어느 순간 빠져들면서 겪는 감정의 회오리를 담았다.
김하늘은 '여교사'에서 10년 동안 같이 살지만 기댈 수 없는 남자친구에 오로지 정규직이 되는 것만을 바라며 부당한 것들을 꾸역꾸역 받아들여야 했던 효주 역할을 맡았다. 감정이 스산하게 타오르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찰나를 오롯하게 그렸다. 김하늘이 그린 '여교사' 이야기를 들었다.
-'여교사'를 왜 했나. 전혀 다른 역할인데다 소재에 노출 부담도 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 영화가 아니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역할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는데 너무 힘들더라.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덮고나니 끝 감정 여운이 오래 남더라. 내가 놓치면 다른 느낌으로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미련이 남겠더라. 출연하겠다고 하고 감독님을 만났을 때도 내가 정말 하려고 했나, 확신이 안 들더라.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혼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자존감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가진 게 많은 친구와 붙는 데 무릎까지 꿇게 되니 너무 속상하더라. 그 감정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역할이 낯설지만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됐다. 원래 도전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하고 싶고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선택했다. 이미지 변신이나 도전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여교사'는 어떤 점에선 내게 분명히 도전이었다. 새로워서 도전이라기 보다, 낯설지만 이해가 돼 도전이었다.
-베드신이 두 차례 있다. 노출은 거의 없지만. 원래 시나리오에는 표현이 더 직접적이었는데. 현재는 김하늘의 감정에 더 주목했는데. 앵글까지 하나 하나.
▶확신이 있었다. 영화 보고 나서 더욱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노출이나 베드신 등에 힘을 쏟으면 이 영화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들, 이야기돼야 할 부분들, 이 여자의 감정들이 오히려 주목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소재 때문일지, 베드신 등으로 알려지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노출 수위 같은 건 내가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이 영화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내 뜻을 많이 따라줬다.
-영화 속 인물이 비지니스적인 친절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부터 날 선 모습인데. 감독의 의도인가, 배우의 뜻인가.
▶내 선택이다. 처음부터 날이 서 있어야 무너질 때 훨씬 애처로워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김태용 감독님의 인터뷰를 봤는데 시나리오보다 영화 속 인물이 훨씬 애처로워 보였다고 하더라. 그게 내가 표현하려 했던 효주였다. 이 여자는 외로웠을 것이다. 10년 사귄 남자친구만 있는데 기댈 수 없고, 정규직 되는 것 하나 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여자. 이런 모습을 그러야 했던 것 같다.
-감독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었을텐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나는 여자가 아니고 배우가 아니니 효주를 연기해야 하는 여자 배우인 당신이 원하는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많이 의견을 냈다. 대사부터 여러 상황, 감정들을 이야기했다. 시나리오에는 있지만 안 찍은 장면 중 하나가 이원근의 교복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다. 난 이 여자가 이사장 딸이 탐한다고 그저 빼앗기 위해 이원근과 만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 너무 뻔하니깐. 뭔가 다 어그러지고 상황이 이상해질 때 찾게 되는 한 가지, 그런 모호한 감정이길 바랐다. 그래서 그 냄새를 맡는다는 장면은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감독님에게 이야기했다. 또 남자친구와 싸울 때도 더 많이 화를 내는 장면이었는데 그 때 오랜 감정이 눅진눅진해진 사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의견을 냈다. 그런 장면들이 많았다.
-올해가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되는데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해 '여교사'를 했나.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할 때도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하려 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블라인드' 때는 장르를 넓히려 했냐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지 않다. 그저 세월이 지나 연기 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몇년 전에 '여교사' 제안을 받았다면 자신 없어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교사'는 내게 도전이 맞는 것 같다. 늘 작품을 할 때 공포든, 멜로든, 로맨틱 코미디든, 사랑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예쁘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었고. 그런데 '여교사'에선 악마 같다는 소리를 듣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너무너무 모욕감이 들더라. 그런 모욕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제공=CJ E&M
-'여교사'를 할 때 지금 남편과 한참 만날 즈음이었는데.
▶내 말과 기사가 다르게 나갈지 모르지 잘 써달라.(웃음) '여교사'를 선택했을 때 정말 많이 사랑 받을 때였다. 그런 시기가 아니었으면 못 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역할에 몰입됐다가 촬영이 끝나면 빠져나와야 하는데, 내가 당시 행복하지 않았으면 쉽게 못 빠져나왔을 것 같다. 그 감정에서 못 빠져 나온 채 다음 날 또 다시 촬영장에 갈 엄두를 못 냈을 것 같았다. 다행히 행복한 시간이어서 감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베드신이 두 차례 있는데. 김하늘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담고, 카메라 앵글까지 거기 포커싱을 맞췄는데.
▶하나하나 다 감독님과 상의했다. 앵글을 분명히 알아야 카메라에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할 수 있으니깐. 감정을 어떻게 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찍히느냐도 중요하니깐. 그래서 앵글, 카메라 동선, 리액션 하나하나 다 상의했다. 두 번째 베드신이 특히 힘들었다. 그 모멸감을 하나하나 다 담아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감정이 토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잠시 정신이 나갔다가 그 일을 당하면서 돌아오는 느낌도 담아야 했다. 감정적으로 정말 드물었다.
-엔딩의 스산한 모습도 인상 깊던데. 그 장면이 영화의 마침표이기도 하고.
▶오히려 그 인물에 완전히 빠져 있었을 때라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8번 테이크가 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감독님이 첫 번째를 썼다고 하더라. 외국에서는 그 장면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칭찬들이 많은데.
▶지금까지 내가 했던 영화들 중 가장 리뷰가 많더라. 그 관심 안에 내가 있고, 내 연기를 이야기해줘서 어느 때보다 좋다.
-상대역인 유인영, 이원근 등과는 어땠나.
▶유인영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았던 것과는 달리 '여교사' 속 인물처럼 정말 사랑스런 친구다. 이원근은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친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더 챙겼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도 있다. 연기에 몰입하면 주변을 잘 안본다.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 잘 챙기는데, 특히 내가 책임지고 이런 역할을 해야 할 때면 주변을 더 못 보게 된다. 첫 회식 때도 시나리오 들고 가서 감독님에게 "지금 술 마실 때가 아니다"며 대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속 인물과 김하늘과 닮은 점은 없나.
▶전혀 다르다. 나라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아예 친해지든지, 아예 외면했든지 했을 것 같다.
-20년 연예계 생활 속에서 김하늘이 자존감을 지킨 방법이기도 한가.
▶음.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좋으면 다가가고, 아니면 거리를 뒀던 것 같다. 좋지 않은 데 일부러 다가가려 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해도 안되는 게 사람의 감정이니깐.
-2세 소식은.
▶음, 그건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
-사적인 영역이 공적인 영역으로 끼어 드는 게 점점 더 싫어지나.
▶꼭 그런 건 아니다. 예컨대 예능 정보 프로그램에선 사생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99%를 영화 이야기하고 1% 사생활 이야기를 하면 사생활 이야기가 타이틀을 장식하지 않나. 그러면 영화에 폐가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여교사'를 봤는데 멋있다고 하더라.
-차기작은.
▶아직.
-여배우가 이끄는 작품이 적나, 아니면 제안 받는 시나리오가 적나.
▶둘 다다.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자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사랑 받는다. 그런 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점점 더 주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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