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하나 식당에서 커뮤니티 센터 봉사자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린다 강 대표와 팀 박 이사장
SYK는 아버지 성함 약자
아버지 섬기는 심정으로 센터서 어르신들 식사대접
SYK 커뮤니티 센터가 에디슨에 문을 연지도 3년이 넘었다. 센터 앞에 붙은 영어 약자 SYK는 설립자 린다 강 대표의 아버지 고 강성용 선생의 영문 약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평생소원이었던 “사랑방”을 열어 주위 어르신들을 모시고자 딸의 염원이 담긴 장소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기개와 정신인 “홍익인간”을 미국에 전파하고 모든 인종을 섬기는 큰 뜻을 품고 있다.
2017년 신년벽두 린다 강 대표의 아버지 사모곡을 들어본다.
아버지 강성용씨는 평범하신 분이었으나 우리가족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분이었다. 1975년 미국 이민을 결정한 이유도 우리 삼남매 교육과 미래를 위한 희생이었다. 한국에서 건축업을 하셨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민 행을 택하신 것은 딸인 나에 대한 사랑이었다. 늘 아버지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하다” “네가 여성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펼쳐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여성이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아니어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을 택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도 부모님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틀 만에 중장비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한국인이 얼마나 성실하고 우수한지 보여줘야 한다.
동료들 쉬는 시간에 더 일하고 맡은 바 책임을 최선을 다해 완수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덕분에 화물열차 회사인 Conrail 하청업체 터미널 매니저까지 역임하셨다. 하지만 과로로 40대 후반에 허리를 다치셨고 건강도 안 좋아 뇌졸증으로 11년간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이셨다. 미국에서 낙엽 밟은 소리가 너무 좋다고 하셨다. 또 중부 뉴저지 한인 10 가정과 매주 토요일 돌아가면서 만나 저녁을 드시고 약주를 즐기셨다. 지금도 센터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들고 어르신들에게 서빙을 하면 40년 전 아버지와 친구 분들을 섬기는 것 같아 가장 행복한 것도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아버지는 6.25세대라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 평생 배움을 낙으로 삼으셨던 분이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출근 전까지 두 시간씩 신문을 샅샅이 읽으시고 뉴스를 꼭 보시며 노트에 필기를 하셨다. 내가 취직을 한 후 옷 색깔, 머리스타일, 행동거지 등을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태도를 말씀해주셨다. 그런 지침이 나의 평생 좌우명이다.
세 남매 중 외동딸이며 막내인 나를 특히 아끼시고 사랑하셨는데 럿거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을 도서관으로 갖다 주셨다. 공부하는 시간을 아끼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고 눈이오나 비가 오나 도시락을 갖다 주신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누구도 이런 지극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도 그립다. 그래서 커뮤니티 센터를 가서 어르신들을 뵈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는 것 같아 너무도 행복하며 또 한편으로는 평생소원이시던 사랑방을 아버지가 즐기지 못해 마음이 아련하다. 그래도 하늘 높은 곳에서 지켜보시며 웃음을 짓고 계시리라 믿는다
<
서영민 지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