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 꿈나무에 휴가낸 시민까지 열띤 응원전
"알파고(AlphaGo)의 승리로 기울었습니다" "반 집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데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마지막 5번째 대국이 열린 14일.
이 9단의 '마지막 승리'를 기원한 시민들은 승부가 확정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인간 대 기계'라는 역사적 대국의 끝을 지켜봤다.
3국을 내리 진 이 9단이 첫승을 거둔 이후여서인지 그가 알파고에 대한 '감'을 잡고 선전을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많았다. 종반 패색이 짙어지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압도적 기계'를 상대로 끝까지 분투한 이 9단에게 박수를 보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이세돌바둑연구소에는 '제2의 이세돌'을 꿈꾸는 바둑 꿈나무 30여명이 모여 수를 검토하고 토론하며 활기찬 모습으로 대국을 지켜봤다.
연구소 사범들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줄 정도로 떠들썩했지만, 마지막 대국을 관전하는 어린 바둑인들의 집중력은 상당했다. 생중계 화면과 바둑판을 분주하게 오가는 눈빛에서 한 수라도 더 배우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홍명제(16)군은 "이 사범님이 원래 바둑밖에 모르는 성격인데 겉으로는 스트레스를 드러내지 않으신다"며 "오늘 표정을 보니 엊그제 이긴 덕인지 많이 홀가분해지신 것 같다. 오늘도 이기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성인 바둑 애호가 20여명이 모여 대국을 관전한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는 적막에 가까운 긴장감이 흘렀다. 전문가의 현장 해설만 실내를 울릴 뿐 음료수 마시는 소리조차 내기 조심스러운지 움직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기원에서 대국을 보던 강모(49)씨는 "바둑을 전혀 모르지만 이번 대국에 큰 관심이 생겨 휴가를 내고 마지막 대국을 보러 왔다"며 "인류와 인공지능의 대국이라니 월드컵이나 올림픽보다 더 긴장되는데 이 9단을 마음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후반부 들어 이 9단의 패색이 짙어지자 남아 있던 시민들은 표정이 굳어지다 이내 체념한 듯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한 수'를 지켜봤다.
현장 해설을 맡은 한종진 9단이 "형세가 기울었다"고 단언하자 지켜보던 바둑 팬들이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기 싫은 듯 "다른 방송 해설진은 반 집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하더라"며 반박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대국을 끝까지 지켜본 김상훈(54)씨는 "이 9단이 5국 내내 바둑이 잘 안 풀리면 입술을 깨물고, 끝나면 씁쓸한 표정으로 바로 복기하며 자책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느낀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대 바둑부 동아리실에도 바둑부 회원과 학생 10여명이 모여 TV 중계를 보며 응원전에 나섰다.
"바둑이 이렇게 주목받는 날이 올 줄 몰랐다"는 이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한쪽 벽에 붙은 바둑판에 한 수 한 수를 따라 둬가며 해설하고 토론했다.
알파고의 착수가 예상을 번번이 비켜가자 "도대체 저 수가 무슨 뜻이냐", "실수일 수도 있다. 저번 대국에서 말도 안 되는 수들을 놓은 것을 보면 알파고가 신은 아니다"라는 등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오후 내내 자리를 비우지 않고 관전에 열중하던 이들은 대국 종반 이 9단이 좌하귀에서 20집 이상 내줘 질 가능성이 크다는 해설이 나오자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지만, "아직은 막상막하다", "다른 집들이 있어 아직 이득일 것"이라는 희망 섞인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9단이 반 집 차로 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회원들은 말을 잃어갔다. 한 회원은 "알파고가 한 집이라도 절대 내주지 않으려 하는 걸 보니 역시 피도 눈물도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바둑부 회장 정내혁(수학교육과 15학번)씨는 이 9단의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바둑의 인기가 계속 줄고 있었는데 이번 대국에 대한 관심으로 신입 회원이 2배나 느는 등 바둑이 큰 관심을 받는 계기가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일터나 집에서 인터넷 등으로 틈틈이 대국을 지켜본 시민들도 아쉬움과 함께 이 9단을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상연(34)씨는 "이 9단의 다섯 대국은 인류가 지금껏 이룩한 역사의 압축판이 아닐까, 그의 승부가 남긴 것들이 결국 인류를 승리의 길로 이끌지 않을까 싶다"며 "외로운 싸움을 한 이 9단에게 존경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직장인 장재원(35)씨는 "이번처럼 이벤트 형식이 아니라 알파고가 '바둑 올림픽'이라는 응씨배에 정식 출전해 인간과 승부를 가렸으면 한다"며 "추후 알파고에 대한 이 9단의 설욕전도 반드시 성사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5단인 설모(61)씨는 "앞선 대국에서 패배 후 일절 핑계를 대지 않고 깨끗이 승복하며 복기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바둑 정신이 많은 이에게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며 "아쉽지만 큰 박수를 보낸다"고 이 9단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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