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14일 워싱턴 DC에서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벌어진다. 이 퍼레이드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일을 맞아 열리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군사퍼레이드를 바라보는 여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연방정부 축소로 무수한 공무원들이 감원의 칼날에 희생되고 있는 마당에 수천만 달러의 돈이 들어가는 군사퍼레이드를 꼭 열어야 하겠느냐는 따끔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군사퍼레이드는 트럼프가 밀어붙여 열리게 된 것이다. 사실 군에 대한 문민지배가 확실한 나라들에서는 군사퍼레이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에도 군사퍼레이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열린 것은 걸프전 종식을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던 지난 1991년이었다.
하지만 단 한 나라, 프랑스만은 예외이다. 프랑스는 매년 프랑스 대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에 큰 규모의 군사퍼레이드를 갖고 있다. 지난 2017년 이 행사에 참석했던 트럼프는 퍼레이드에 완전히 매료됐던 것 같다. 워싱턴 DC에서도 이런 퍼레이드를 열고 싶었던 그는 재향군인의 날이자 1차 대전 종전 100주년이었던 2018년 11월11일 대규모 퍼레이드를 열려고 했다. 하지만 독재국가를 연상시키는 행사에 막대한 예산을 쓸 수 없다는 의회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생각을 접어야 했다.
당시 퍼레이드를 반대했던 의회와 여론의 지적처럼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정권 강화와 군사력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북한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김씨 일가의 지도력을 찬양하고 군대를 중심으로 민심을 결집하는 선군 정치도구로 퍼레이드를 벌여왔다.
중국 또한 공산당의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활용한다. 러시아는 한동안 퍼레이드를 축소하거나 중단해오다 푸틴 집권 이후 다시 첨단 무기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군사퍼레이드를 재개했다.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문가지이다.
2022년 5월 취임해 2025년 4월 파면된 윤석열은 재임 기간 중 두 차례나 10월1일 국군의 날에 도심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실시했다. 이 퍼레이드는 육해공 4,000명이 동원되고 1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행사이다. 퍼레이드에 소요되는 예산과 군인들의 노고, 그리고 실효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권력자의 집착과 아집으로 군사퍼레이드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하자 집권 초의 권력으로 군사퍼레이드를 밀어붙여 기어이 이를 성사시켰다. 이 퍼레이드에는 150대의 차량과 50대의 전투기, 그리고 6,600명의 병사들이 동원된다. 병사들은 퍼레이드를 전후해 수일 동안 워싱턴 DC의 연방청사 건물들 안에 묵게 된다. 퍼레이드 자체에 들어가는 4,500만 달러의 막대한 돈, 군인들의 땀과 노고도 그렇지만 엄청난 하중의 탱크들이 밟고 지나간 후 생길 도로손상 등 사후 문제 처리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해가며 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많은 미국인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날 곳곳에서는 항의 시위가 예정돼 있다. 트럼프는 평소 푸틴과 김정은 같은 절대 권력자들에 대한 선망을 숨기지 않아 왔다. “6월14일 퍼레이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군인들이 아닌, 트럼프 한사람의 에고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리는 것일 뿐”이라는 한 참전용사 단체 관계자의 일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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