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계의 새 바람'이라고 하자 겨울의 기운이 아직은 남은, 4월 같은 수줍은 웃음이 돌아온다. 무대 위에서 풍기는 몽환적 퇴폐미 대신 순수함, 호기심, 신중함이 깃든 표정이다. 홍대앞 새로운 포크 흐름을 만들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다. 지난해 싱어송라이터 김해원과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김사월×김해원'의 EP '비밀'로 지난 2월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받는 등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내며 인디 신을 들썩였다. 그리고 최근 솔로 정규 1집 '수잔'을 발매했다. 김사월 개인의 삶을 형상화한, '수잔'이라는 인물을 타이틀로 내세운 '수잔'을 비롯해 타이틀곡 '머리맡'과 '접속' 등 총 11곡이 담겼다. 그녀와 듀엣으로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김해원이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 대한 반응 역시 뜨겁다.
인기를 실감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반응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며 웃었다. “‘김사월×김해원' 때는 많은 분들이 시간이 좀 걸려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조금은 더 반응을 빨리 해주는 것 같다"는 기분이다. 대중의 반응을 “의식할수록 안 좋은 것 같다. 의식을 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며 눈을 빛냈다.
김사월은 본래 솔로 앨범을 먼저 내려고 했다. 홍대앞에서 오고가며 마주친 김해원이 ‘사막'의 피처링을 부탁한 것이 두 사람이 프로젝트 앨범을 내는 단초가 됐다.
“당시 혼자 녹음도 해보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협업한 결과물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도가 있었다. 그래서 해원씨에게 내 솔로 앨범에 대한 프로듀싱과 자문을 했고 승낙을 받았다. 2014년 초였는데 그렇게 작업을 할 거면, 서로의 공연을 서포트하자는 말도 나왔고. 품앗이를 했는데 공연 주최측에서 점점 두 명을 같이 부르더라. 호호."몇몇 홍대앞 뮤지션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뭉친 ‘자립음악생산조합' 조합원으로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언더그라운드 음반축제 ‘레코드 폐허' 공연을 위해 만든 싱글 100장이 단숨에 매진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비밀'은 이 싱글을 확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사월의 첫 솔로 앨범 발매도 ‘유예'됐다. 그 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앨범을 한 번 녹음하고 나니 경험도 쌓였고, 향상된 부분도 있다. 활동도 미리 해서 자리가 잡힌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 단단해지는 과정이다."가상의 인물, 김사월의 또 다른 자아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수잔을 앞세운 콘셉트 앨범이다. 비교적 최근에 만든 표제곡 ‘수잔'과 타이틀곡 ‘머리맡' 정도 외에는 솔로 활동을 꿈꿨던 2012년부터 혼자서 만들어왔던 곡들이다. 그로 인해 곡들에는 다양한 감정의 결들이 새겨졌다. 온라인 음원 공급·배급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에 메모 형식으로 올렸던 30곡 가량에서 뽑았다.
‘수잔'은 김사월의 페르소나일까.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김사월×김해원' 활동을 할 때 나 스스로를 위한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독이고 싶고, 위로하고 싶고. 가사는 그런데 그런 노래가 아니다. 나를 위한 노래를 쓰고 싶다고 생각이 컸다. 근데, 이름은 수잔이다. 다른 여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콘셉트가 편안하더라. 내 안의 심적 깊숙한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데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인데'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앨범 수록곡이 모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특히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반향이 크다. “늦은 밤 나는 컴퓨터로 춤추는 여자 아이돌을 봐. 모든 사람들은 꽃 피는 여자를 다 갖고싶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어"라고 노래한다. 또 “늦은 밤 나는 컴퓨터로 아름다운 여자옷을 봐. 여러 가지 빛깔 세련된 디자인 다 체험하고 싶지만 나는 아무것도 입을 수가 없어"라고도 읊는다.
김사월은 “이 노래가 나오면 몇몇 사람은 좋아하면서도 힘들게 듣겠구나 생각했다"고 짚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니구나, 틀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현실과 맞닿아 있어 두렵다는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사월의 가장 큰 매력은 목소리다. 특별한 기교 없이 깨끗한데, 몽환적이면서도 요염하고 청순하면서 귀여움이 배어 있다. “곡마다 메시지가 다르니, 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해원씨와 작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뉘앙스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나도 그렇고 해원씨 보컬도 그렇고 세게 부르지 않는다. 나지막하다. 기교를 쓰는 보컬이 아니라 편안하게 부르는 보컬이다. 그 안에서 다이내믹함을 주고자하는 고민으로 뉘앙스에 민감하게 되더라."19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대 콘셉트와 패션도 몽환적 퇴폐미를 풍긴다. 김사월은 1960년대를 풍미한 프렌치팝의 아이콘 프랑수아즈 아르디(71), 1960년대와 70년대를 휩쓴 미국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태도를 참고했다.
김사월의 전공은 사실 공예다. 어릴 때부터 유희열·신해철이 DJ를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음악 감성을 키웠으나 스무살 때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서는 미대에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포크 음악을 하게 된 까닭도 기타 한 대에 목소리만 있으면 자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사월은 이처럼 자립심이 강하고 주체적인 싱어송라이터다. 여성이 타자화되기 쉬운 한국 사회, 그 중에서도 대중가요계에서 그녀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나는 본래 인간 관계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타입이 아니다. 소극적인 인간 관계를 유지한다. 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유를 하고. 근데 음악을 할 때는 사람들과 관계 없이, 온전하게 하고 싶은 말을, 느끼는 것을 편하게 쓸 수 있다. 곡을 쓸 때만큼은 죄책감을 염려하지 않는 것 같다. 앨범에 그런 것이 반영된 듯하다."점차 존재감을 드러내는 뮤지션에게는 자연스레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함께 한다. ‘살롱 드 오수경'의 바이올리니스트 장수현과 첼리스트 지박,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베이시스트 노선택, ‘필로멜라'의 플루트 연주자 이기현, ‘김오키 동양청년'의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 등 인디 신을 주름잡는 연주자들이 이번 앨범에 참여했다. 김사월은 이와 함께 1일 오후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 여린 미국의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줄리아 홀터(31)의 첫 내한공연 오프닝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김사월은 ‘김사월×김해원'은 자신의 음악 인생에 예상치 못한 변수였는데 “지금까지는 잘 준비하면서 오고 있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처음 내 마음가짐은 혼자서 곡 만들고 완성하고, 듣는 사람이 조금 있고…. 이러한 작은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었다. 근데 해원씨와 작업을 하고 조합을 알게 돼 여러 음악가들과 활동을 하고. 이렇게 1집까지 내게 됐다."조용히 옆에서 내내 김사월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이던 김해원은 “이번 솔로 앨범에 실린 사월씨 곡이 좋았다. ‘김사월×김해원' 앨범보다는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더 있을 것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월씨가, 내가, 만족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만족을 해야, 청자들에게 우리가 느낀 것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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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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