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단이 촌티를 벗지 못해 보일 수 있는데 그건 솔직하기 때문이다. 갖은 고생을 해도 그녀가 반짝 하는 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거기에 자신을 맡길 줄 알기 때문이다.”
'모던 걸'을 가리는 대회가 있다면, 가수 호란(36·최수진)이 1등을 할는지도 모른다. 2004년 퓨전 일렉트로닉 밴드 '클래지콰이'로 데뷔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보컬과 태도, 그리고 심지어 생각마저 모던한 기운으로 차고 넘쳤다. '척'하는게 아니라, 당당함과 취향에서 풍겨나온 자연스러움이었다. 이후 '트렌드세터'라는 당연한 수식이 따랐다. 호란이 1인 음악극 '천변살롱'에서 '모던 걸' 모단을 연기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2009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천변살롱'은 1930년대 한국 가요사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모단은 기생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천변살롱의 마담이 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예술가들을 만나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운다. 운명의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사랑에 배신도 당한다.
모더니스트들이 모이던 낭만과 향수가 깃든 천변살롱의 분위기를 재현한 무대에서 노래한다. 호란은 모단에 대해“언뜻 촌스럽거나 어설퍼 보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작품과 라이프 스타일에 감화받는다. 소양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지"라고 해석했다.“그런 모습에 공감이 됐다. 나도 공연을 좋아하고 또 하면서 문화예술 계통의 많은 분들을 만나 배우고 감화받고 했다. 많은 지점을 녹여낼 수 있을 듯하다."모던걸이라는 설정은 호란과 더 없이 잘 어울린다.“클래지콰이가 세련된 음악, 모던한 음악을 들려줬는데 솔직히 내가 그것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계속 의식하고 고민했다. 한때 나르시시즘에 젖어서 이런게 세련된 것이라고 `작은 허영'에도 젖고. 호호. 무엇보다 모단이 느꼈을 것들에 대해 계속 접점을 찾고 있다."일제강점기 1930대는 암울하고 아팠으나 문화적으로는 뜨거웠다. 신낭만주의에서 혁신적인 다다이즘까지 다양한 문화의 용광로였다. `천변살롱'에서도 이 모습이 그려진다.“당시를 생각하면 남자들의 검은 동그란 안경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때는 패션도 새로운 것들이 많이 들어왔다. 음악,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흐름이 계속 바뀌지만 그때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들어왔으니까. 의복도 바뀌고. 최승희가 부른 노래 등 그 당시 음악을 요즘 계속 듣는데 신기하다. 가이드 보컬도 따로 없었을 텐데,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표현들을 할 수 있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것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부분에 흥미가 생기고 있다."아이러니한 것은 `문화 빅뱅'이 일어나고 있어도 그것을 무조건 축하할 수는 없던 시대라는 점이다.“희극적인 가사 안에도 단순하게 그 감정만 있지 않더라. 극에서 모단을 비롯해 문화예술에 종사한 이들, 그러니까 작곡가·시인의 예술 안에 아픔, 슬픔이 있다. 그런 시대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고, 타협하는 사람이 있고, 폭발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정서들이 진하게 느껴진다."호란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은 2008년 `샤우트' 이후 7년 만이다. 전작이 뮤지컬 데뷔작이었으니 이번이 두 번째 뮤지컬이다. 오랜만에 뮤지컬에 나선 까닭은 당시 노래들에 매력을 느낀 점이 가장 컸다. 호란은 `나는 열일곱살이에요' `오빠는 풍각쟁이' `노들강변' 등 약 13곡을 소화한다.
완전한 뮤지컬 형식이 아닌, 음악극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밴드가 함께 무대에 올라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형식이 그렇다. 2009, 2010년 이어 이번에도 `천변살롱'에 음악감독 겸 연주자로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 하림을 비롯해 기타 고의석, 베이스 이동준·송기하, 바이올린 조윤정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살롱밴드의 존재가 힘이 됐다. 어려운 1인극임에도 욕심을 낸 이유다.
“혼자서 극을 이끌어가야 해서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콘서트 같은 무대를 차용하고 있어 용기를 냈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지만 밴드가 함께 하니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봤다." 첫 뮤지컬은“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지만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다음 뮤지컬은 덜컥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백이다.
드라마, MC, 작가 등 다방면에서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호란은 `천변살롱' 출연을 `앞으로 본격적인 연기자가 될 거야'라는 동기로 삼는 것은 건방진 듯하다고 본다.“무엇보다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내가 잘하는 걸 최대 드러내고, 부족한 것은 최대 숨겨야지. 그를 통해 최대한 재미를 살리고 싶다. 나의 모단에 관객들이 과연 공감을 해줄까가 제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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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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