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 진단- 한인은행 지배구조 문제 있다
▶ 길게는 20년 넘게 차지 이사들 견제 기능 상실 상장회사도 사기업처럼 경영진은 ‘식물’ 전락
남가주를 중심으로 영업하는 8개 한인은행들의 총 자산이 193억달러에 달하는 등 한인 은행권은 규모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은행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이사회 이사장의 제왕적 권한의 부작용과 이사장에 대한 견제기능 미비, 전문성 부족과 장기재임 등 구태의연한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사장의 ‘제왕적’ 권한 남용이 행장 등을 ‘식물’ 경영진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사장이 대출을 비롯한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전문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장기재임 문제까지 겹치며 주주들 사이에서 상장회사지만 사기업처럼 다루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은행 이사들의 이사장에 대한 감시 및 견제 기능은 사실상 상실됐다.
BBCN, 윌셔, 한미 등 3개 상장은행을 비롯한 6대 한인은행의 이사회 이사장으로서 활동기간은 짧게는 2년여에서 길게는 22년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장수 이사장은 단연 윌셔은행의 고석화 이사장으로 1986년부터 이사로 합류해 1993년 이사장에 오른 뒤 22년 넘게 이사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BBCN의 케빈 김 행장은 행장직과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노광길 한미은행 이사장은 1984년 첫 이사로 등재된 최장수 이사로 꼽힌다. 여기에 3대 비상장 은행의 이사장들도 3~9년의 이사장으로서 연륜을 자랑한다.
문제는 주주 동의 및 이사회 결정을 거쳐 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경영권한을 일임한 것과 무관하게 이사장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분을 보유한 이사는 물론이고 최근 한인은행들이 ‘전문성 강화’라는 목표로 경쟁적으로 영입한 공인회계사 등 외부 전문직 이사들의 경우 이사회 내에서도 힘이 없는, 감독국을 의식한 ‘들러리’라는 지적이다.
한인은행권에서는 압도적인 지분율을 바탕으로 장기 재임하고 있는 고석화 이사장에 대해 윌셔은행 창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한인은행권의 ‘제왕적 이사장’의 상징으로 여긴다. 또한 이같은 제왕적 이사장 폐단의 일례로 은행 경영상 가장 중요한 결정사안으로 꼽히는 대출결제 라인에 유재환 행장이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2007년에는 고석화 이사장의 아들 피터 고씨가 시니어 론 오피서로 입사, 2013년 최고대출책임자(CCO)를 거쳐 지난해 전무로 승진해 윌셔은행의 대출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윌셔 측은 고 전무에 대해 “은행 경영과 관련된 광범위한 전략적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윌셔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 행장 취임 후 대출을 결정하는 론 커미티에 행장이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끔씩은 하지만 대부분은 CCO인 피터 고 전무와 그 아래 스페셜리스트들이 론을 결정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유 행장 이전의 행장들이 대출관련 부실을 양산했다는 내부 지적에 따라 론 커미티에서 행장의 입김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견과 함께 후계구도에 관한 루머들로 윌셔은행 안팎은 뜨겁다. 한 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부실 방지가 목적이라면 론 커미티의 구성과 역할을 재편하면 될 것”이라며 “경영권한을 일임한 행장을 은행의 의사결정 중 최고봉인 대출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고 이사장의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밀어주고 있다면 누가 봐도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힘 실어주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고 이사장이 이사장은 물론, 최대 주주인 점이 작용하며 경영진은 물론, 일반 직원들까지도 눈치 보기, 줄서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한인사회에 나돌고 있다. 월가에서는 유 행장 이후 후임 행장에 피터 고 전무가 될 것인가의 여부를 ‘경영상 불확실성’(management uncertainty)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인 상대 비즈니스가 대다수인 가운데 피터 고 전무가 부족한 한국어 실력에 한인 커뮤니티와 어울리지 못하는 점 등을 들어 이미 한인은행권에서는 이전 나라은행의 앨빈 강 행장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한인은행 관계자들은 “아직도 은행 이사와 이사장을 명예직으로 생각하는 한인 이사들이 많다”며 “한인 이사, 나아가 이사장들이 장기 재임하고 있지만 나이나 영어 구사능력, 은행에 대한 전문성 분야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고 특히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0~40대, 영어권, 타인종 직원과의 소통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미국 내 자산 2위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지배구조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양대 공적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이 브라이언 모이니헌의 CEO와 이사회 의장직 겸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지난 9월22일 임시 주총에서 표 대결 끝에 63%의 찬성으로 겸임은 승인됐지만 은행 내 권한 집중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는 계기가 됐다. 쉴라 베어 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이와 관련, “권한 집중도 문제지만 적정한 인물이고 실력을 갖췄는지가 관건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해 한인은행권의 현 상황과도 맞닿는 발언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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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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