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알래스카를 떠나면서 자신이 이겼다는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유럽연합(EU) 및 나토의 지도자들과 백악관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그런 인상은 급속히 사라졌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적인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트럼프는 “지금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혼란으로 끝날 2년짜리 평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에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그의 최종 임기가 끝난 후 러시아가 세 번째 침공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안보 보장 조치를 제공하려 한다.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이지만 그는 다국적군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비무장지대 경비를 담당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럽군 병력이 ‘일차 방어선’으로 지상에 배치되고 아마도 미국의 공군력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게 9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무기 구매자금을 제공하는데 합의했다. 이처럼 방대한 무기 거래는 미국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게 확실한 군사적 억제력을 제공함으로써 러시아가 전쟁을 재점화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젤렌스키는 러시아 내륙 깊숙이 침투해 여러 대의 전략폭격기를 파괴하는데 사용된 자국산 첨단 무인기를 미국 측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미국이 한국 및 일본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에 담긴 나토 집단방위조항 ‘제5조’와 유사한 안전보장 조치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준비가 된 것으로 알려진 점이 가장 중요하다. 즉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다시 공격을 당한다면 이미 동일한 보장을 제공한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 방어를 돕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제안을 하면서 트럼프는 지극히 현명한 방식을 추구했다. 푸틴의 레드라인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다. 따라서 젤렌스키가 워싱턴에 도착히기 전에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우크라이나에 나토가 누리고 있는 것과 유사한 안전보장을 제안했다. 트럼프는 푸틴에게 그가 원하는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가입은 없다는 당근을 제시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게 나토의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나토 회원국이 누리는 혜택을 약속한 셈이다. 이것이 트럼프가 공언한 항구적 평화구축의 핵심이다. 푸틴은 단 한번도 집단방위 제5조의 우산 안에 있는 국가를 침략한 적이 없다.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주도한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는 구체적인 안보조치들과 결합해 젤렌스키에게 푸틴과 협상에 필요한 여유있는 공간을 준다. 반면 푸틴은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만일 푸틴이 이처럼 상식적인 안전보장 조치에 반대한다면 그에게는 트럼프가 제안한 ‘지속적 평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아직도 우크라이나 정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셈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집단방위조약 ‘제5조’는 푸틴이 재침공을 감행했을 때에만 발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젤렌스키와의 양자회담이라는 평화협상의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데 푸틴이 주저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는 이같은 회담을 주선하겠다는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부할 경우 그는 트럼프가 공을 들인 평화협상 실패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는 분명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 제재라는 해머를 휘두를 것이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 주내에 푸틴 대통령에 관해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합의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푸틴 대통령이 좋은 결정을 내기릴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은 분명 알래스카에서 세계 무대에 복귀한 것을 기꺼워했다. 그러나 그는 만만치 않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 트럼프의 워싱턴 정상회담으로 평화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러시아측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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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A. 시쎈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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